‘임을 위한 행진곡’ 단상-김태종 5·18진상조사위 조사관
2022년 06월 13일(월) 01:00 가가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는 1980년대 이래 한국 민주화운동의 애국가였다. 대학가는 물론 노동·농민 운동을 비롯한 각종 투쟁 현장에서 단골 메뉴로 불리었다.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는 정부 주관의 5·18 기념식에서 계속 제창돼 왔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두 번째 해인 2009년 기념식부터는 기존의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바뀌었다. 합창단이 이 곡을 부르면 원하는 참석자들만 따라 부르는 방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기간 중 첫 해인 2013년에 한 차례 5·18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때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보수 논객들이 색깔을 칠했다. “이 노래에서 ‘임’은 김일성을 지칭한다. ‘새날’은 공산주의 혁명이 완성되는 날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김일성의 지시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 황석영은 1989년 방북하였고 이 노래는 1982년에 만들어졌다.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만들었다면 황석영은 간첩인 셈이다. 노래 한 곡도 5·18 진상 규명 대상 중 하나라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이 노래가 탄생한 지 어언 40년이 흘렀고, 지난 5월 27일 광주문화재단 주최로 광주극장에서 ‘창작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황석영 작가 등 당시 광주 문화패들이 참석하였다. 여기서 제기된 문제가 창작 시기와 가사의 변형이었고 이를 여러 지면에 서 다룬 바 있다. 필자는 가사에 대한 단상을 덧붙이고자 한다.
왜 수구 기득권층은 이 노래를 싫어할까? 5·18은 그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국가 폭력의 민낯을 이 노래는 정확히 지적한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고. 또한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고 남은 자들에게 권유한다. 불의와 폭력에 맞서기를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작사가 황석영도 이 노래는 ‘먼저 간 사람들(열사)의 남은 자에 대한 당부’라고 이야기한다.
이 노래는 흔히 다음과 같이 불린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①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②깨어나서 외치는 ③뜨거운 함성
④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한데 원 가사는 ‘①흔들리지 말라 ②깨어나 소리치는 ③끝없는 함성 ④앞서서 가나니’이다. 즉 ‘망자의 당부’였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다짐하듯 부르다 보니 ① ④로 바뀐 것 같고, ②는 ‘소리치는’보다 ‘외치는’이 더 입말에 맞아 변형된 것 같다. ③역시 현장의 욕구나 열기를 드러내기 위해 ‘끝없는 함성’이 ‘뜨거운 함성’으로 바뀐 것 같다. 그런데 함성은 원래 뜨겁지 않나? ‘끝없는 함성’도 망자가 끊임없이 소리 지른(각성 촉구)다는 의미이다. ④의 ‘앞서서 나가니’와 ‘앞서서 가나니’가 무슨 차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는 선봉(先鋒)과 선구(先驅)의 미세한 차이처럼 ‘가나니’는 망자의 발화이고, ‘나가니’는 남은 자의 다짐이다.(한때는 집회 현장에서 ‘앞서서 싸우니’로 부르기도 했다.)
창작 의도는 망자의 당부였는데 남은 자의 각오와 다짐이 더 드세어진 셈이다. 물론 노래는 창작자의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창자(대중)의 것일 수 있다. 요즘 말로 지적소유권은 창작자에 있으나 향유권은 대중에게 있다. 그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중 가요가 되고 세계적인 명곡이 된 만큼 가사의 변형 문제는 관련된 단체와 전문가, 창작자들의 ‘머리 맞댐’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좋은 노래는 혼자 부르지 않는다. ‘임’은 영혼 결혼식의 주인공 윤상원 열사만이 아니라 5월 영령, 더 나아가 민주화를 열망하며 불의에 항거하다 산화해 간 모든 넋을 가리킨다. ‘임의 침묵’의 시인 한용운 선생의 말처럼 “임만이 임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임이다.”
이 노래는 흔히 다음과 같이 불린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①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②깨어나서 외치는 ③뜨거운 함성
④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한데 원 가사는 ‘①흔들리지 말라 ②깨어나 소리치는 ③끝없는 함성 ④앞서서 가나니’이다. 즉 ‘망자의 당부’였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다짐하듯 부르다 보니 ① ④로 바뀐 것 같고, ②는 ‘소리치는’보다 ‘외치는’이 더 입말에 맞아 변형된 것 같다. ③역시 현장의 욕구나 열기를 드러내기 위해 ‘끝없는 함성’이 ‘뜨거운 함성’으로 바뀐 것 같다. 그런데 함성은 원래 뜨겁지 않나? ‘끝없는 함성’도 망자가 끊임없이 소리 지른(각성 촉구)다는 의미이다. ④의 ‘앞서서 나가니’와 ‘앞서서 가나니’가 무슨 차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는 선봉(先鋒)과 선구(先驅)의 미세한 차이처럼 ‘가나니’는 망자의 발화이고, ‘나가니’는 남은 자의 다짐이다.(한때는 집회 현장에서 ‘앞서서 싸우니’로 부르기도 했다.)
창작 의도는 망자의 당부였는데 남은 자의 각오와 다짐이 더 드세어진 셈이다. 물론 노래는 창작자의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창자(대중)의 것일 수 있다. 요즘 말로 지적소유권은 창작자에 있으나 향유권은 대중에게 있다. 그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중 가요가 되고 세계적인 명곡이 된 만큼 가사의 변형 문제는 관련된 단체와 전문가, 창작자들의 ‘머리 맞댐’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좋은 노래는 혼자 부르지 않는다. ‘임’은 영혼 결혼식의 주인공 윤상원 열사만이 아니라 5월 영령, 더 나아가 민주화를 열망하며 불의에 항거하다 산화해 간 모든 넋을 가리킨다. ‘임의 침묵’의 시인 한용운 선생의 말처럼 “임만이 임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