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혐오와 대립의 시대를 넘어-오태화 위민연구원 이사·대학생
2022년 05월 23일(월) 02:00 가가
뉴스를 보기에 지치는 시간이 찾아왔다. 정치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상대 후보의 단점을 치졸하게 공략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멸시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간다. 국민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시간이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혐오 정서의 뿌리는 매우 깊다. 소위 말하는 인터넷 속 커뮤니티에서는 끊임없이 혐오 콘텐츠가 창작되고 유통되며, 확산된다. 교묘하게 일상 언어 속에 혐오 언어를 섞어 만든 콘텐츠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서 속에도 뿌리박힌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방지하고 막아 내기는커녕 도리어 부추기고 즐거워하며 상대 세력을 공격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정치와 대한민국 사회가 가진 고질적 ‘혐오 불감증’은 이렇게 심각하다.
사회적 혐오는 마치 중독과도 같다. 처음 한 방울의 독은 몸에 별다른 반응을 야기하지 않을지라도, 지속적으로 주입되는 독은 마침내 우리의 모든 신체를 잠식해 죽음으로 이끈다. 우리 사회 속 혐오는 마치 독소와도 같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그리고 독으로 인해 신체의 가장 약한 부분부터 서서히 망가지듯이 우리 사회 역시 가장 약한 이들의 삶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 우선 정책의 핵심은 누구나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 있다. 지금은 사회의 다수에 속한 이들일지라도 불의의 우연성을 통해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일상 격차를 완화해 누구든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안전망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우선 정책은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같은 시선 높이에서 일상을 살피고, 모든 격차를 없앨 수 없을지라도 격차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 책임 의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실적과 수치 위주의 형식적 정책으로 귀결되고 만다.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혐오 정서는 사회적 약자 우선 정책의 확대를 부정하곤 한다. 약자들의 일상을 개선하고 살피는 것이 다수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논리이다. 아울러 이들을 살피는 과정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역차별의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불공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언뜻 대단한 설득력과 확산력을 가지는 듯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다수로,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소수로 명명해 전개되는 이 의견은 위험할 만큼 유혹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약자 우선 정책의 결과론적 접근 방식일 뿐이다. 정책의 숨은 의도도, 숨은 필요성도 고려되지 않은 위험한 의견이다. 자신은 언제나 다수에 속해 있을 것이며, 자신이 속한 모든 집단이 반드시 다수와 강자의 위치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 발상이다. 이러한 의견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가 마침내 사회 전체를 좀먹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 나가야 하는가? 가장 먼저 설득과 대화의 과정이 절실하다. 정책의 실질적 수혜자뿐 아니라, 직접 연관을 가지지 않는 이들 역시 다양한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얻어야만 한다. 예컨대 학생 복지를 다루는 토론회와 공청회에서 학생과 교육 현장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해 복지 예산의 확보와 정책 확대의 필요성을 함께 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확장하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정책 논의 과정을 공개하고 의견 개진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 나가야만 한다. 자신들의 일로, 자신들의 목소리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식 전반을 개선할 필요도 있다. 이들 역시 수많은 우연성으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잠시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 구성원 누구건 활용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안전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제 혐오와 대립의 시대를 종식시켜야 할 때가 다가왔다. 따뜻한 사회, 상생과 협력의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 더 푸른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 혐오는 마치 중독과도 같다. 처음 한 방울의 독은 몸에 별다른 반응을 야기하지 않을지라도, 지속적으로 주입되는 독은 마침내 우리의 모든 신체를 잠식해 죽음으로 이끈다. 우리 사회 속 혐오는 마치 독소와도 같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그리고 독으로 인해 신체의 가장 약한 부분부터 서서히 망가지듯이 우리 사회 역시 가장 약한 이들의 삶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약자 우선 정책의 결과론적 접근 방식일 뿐이다. 정책의 숨은 의도도, 숨은 필요성도 고려되지 않은 위험한 의견이다. 자신은 언제나 다수에 속해 있을 것이며, 자신이 속한 모든 집단이 반드시 다수와 강자의 위치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 발상이다. 이러한 의견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가 마침내 사회 전체를 좀먹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 나가야 하는가? 가장 먼저 설득과 대화의 과정이 절실하다. 정책의 실질적 수혜자뿐 아니라, 직접 연관을 가지지 않는 이들 역시 다양한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얻어야만 한다. 예컨대 학생 복지를 다루는 토론회와 공청회에서 학생과 교육 현장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해 복지 예산의 확보와 정책 확대의 필요성을 함께 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확장하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정책 논의 과정을 공개하고 의견 개진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 나가야만 한다. 자신들의 일로, 자신들의 목소리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식 전반을 개선할 필요도 있다. 이들 역시 수많은 우연성으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잠시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 구성원 누구건 활용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안전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제 혐오와 대립의 시대를 종식시켜야 할 때가 다가왔다. 따뜻한 사회, 상생과 협력의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 더 푸른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