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5·18특별전’ 현장에서] ‘밝은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김지연 광주비엔날레재단 전시부장
2022년 05월 18일(수) 22:00 가가
광주비엔날레재단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특별전 ‘꽃 핀 쪽으로’ 가 열리고 있는 베니스의 전시 공간 스파치오 베를렌디스는 베니스 안에서도 꽤 특별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운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으로는 대부분의 베니스 사람들이 태어날 때,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간다는 조반니 에 파올로 병원과 15세기 이후로 베니스 최고지도자들의 장례식 대부분이 이루어졌다는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이, 전시장 주 출입구 맞은편 골목으로는 관 제작소가, 그 너머 바다 저편에는 베니스 사람들이 마지막에 묻힌다는 공동묘지섬 산 미켈레가 보인다. 붉은 벽돌담 너머로 죽음을 위로한다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울창하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망자의 섬을 뒤로 하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광주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신념으로 싸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향한 애도의 마음과 함께, 그 죽음 위에 꽃피운 우리의 오늘이 스친다.
전시장의 전면 창 밖에 보이는 운하로 관을 실은 앰뷸런스 배가 오가는 모습을 보며, 이번 전시의 제목을 빚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도입부를 떠올려본다. 망자를 위한 추도식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 속에서. 광주 적십자병원에서 실려 나온 이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곳까지 닿는 것 같다.
“수천 사람의 목소리가 수천 미터의 탑처럼 겹겹이 쌓아올려져 여자의 목소리를 덮어버린 것처럼”이라는 소설의 한 문장이 진 마이어슨의 작품 위로 겹쳐 올랐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광주의 광장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베니스의 전시장에 증강현실로 불러들였다. 사람들이 탑처럼 모여 있는 그림 앞에서 휴대폰 카메라를 켜면, 어느 새 전시장은 광주의 광장으로 변한다.
노순택이 망월동 묘지에서 발견한 망자들의 사진은 빗물에 세월에 조금씩 지워져 갔다. 얼굴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망자가 꿈꾸었던 세상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서는 안 될 테지만, 기억은 손쉽게 지워지고 뒤틀린다. 흔들리는 기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시장에는 하루에 100명 가까운 관객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는데, 혁명의 역사와 정치적인 문제의식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전하는 작가들의 작품 덕분에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현지 관람객들의 후기가 들려온다. 80년대에 광주에 있었다는 한 외국인 관객이 전시회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에, 전시가 갖는 공감의 힘을 실감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열렸던 한강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가 “희망은 상상력이 필요한 발명품”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죽음으로, 희생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이 가슴에 품었을 그 소중한 ‘희망’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홍성담이 광주의 오월을 기록한 판화 50장의 시간을 넘기며, 이제 비로소 꽃 핀 쪽으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한강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이제 희망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이 전시가, 여전히 아픔 속에 있는 이들을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운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으로는 대부분의 베니스 사람들이 태어날 때,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간다는 조반니 에 파올로 병원과 15세기 이후로 베니스 최고지도자들의 장례식 대부분이 이루어졌다는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이, 전시장 주 출입구 맞은편 골목으로는 관 제작소가, 그 너머 바다 저편에는 베니스 사람들이 마지막에 묻힌다는 공동묘지섬 산 미켈레가 보인다. 붉은 벽돌담 너머로 죽음을 위로한다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울창하다.
노순택이 망월동 묘지에서 발견한 망자들의 사진은 빗물에 세월에 조금씩 지워져 갔다. 얼굴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망자가 꿈꾸었던 세상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서는 안 될 테지만, 기억은 손쉽게 지워지고 뒤틀린다. 흔들리는 기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시장에는 하루에 100명 가까운 관객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는데, 혁명의 역사와 정치적인 문제의식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전하는 작가들의 작품 덕분에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현지 관람객들의 후기가 들려온다. 80년대에 광주에 있었다는 한 외국인 관객이 전시회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에, 전시가 갖는 공감의 힘을 실감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열렸던 한강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가 “희망은 상상력이 필요한 발명품”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죽음으로, 희생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이 가슴에 품었을 그 소중한 ‘희망’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홍성담이 광주의 오월을 기록한 판화 50장의 시간을 넘기며, 이제 비로소 꽃 핀 쪽으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한강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이제 희망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이 전시가, 여전히 아픔 속에 있는 이들을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