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동 사망자는 63년생 김종철씨’ 발표에 유족 “우리 종철이 아니다”
2022년 05월 15일(일) 20:25 가가
“5.18조사위 발표 못 믿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 12일 대국민 보고회 형식으로 발표했던 내용 가운데 일부가 5·18 당사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5·18진상조사위는 “1980년 5월 24일 광주시 남구 송암동에서 사망한 희생자에 대해 ‘일부에선 다큐멘터리 사진 속의 김군’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조사결과 ‘63년생 김종철씨’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는데 정작 유족들은 “우리 종철이가 아니다”고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고(故) 김종철씨의 친형 김종국(61)씨는 지난 14일 광주일보와 통화에서 “우리 종철이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최후 항전 과정에서 숨졌다. 동생 나이도 62년생인데 63년생으로 발표한 5·18진상조사위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종국씨는 이어 “종철이가 1980년 5월 25일 시내에서 환자를 수송하는 시민군 차량을 몰던 것을 봤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남구 송암동 학살’ 과정에서 숨졌다는 조사위 발표 결과를 어떻게 믿느냐”며 “국민에게 내놓는 자료를 유족 면담이나 통화도 없이 발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목격자인 최진수씨 역시 “당시 공수부대원이 희생자 관자놀이에 총을 바짝 대고 쏜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당시 숨진 이는 5·18진상조사위가 발표한 김종철씨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그분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는데, 김종철씨의 사체검안서에는 사망원인이 ‘타박상’으로 기재돼 있다. 5·18진상조사위는 어떻게 설명할 셈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5·18진상조사위는 이에 대해 “김종철씨 유족이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날을 25일로 주장한 것은 잘못된 기억”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당시 검안의에게 확인한 결과, 사체검안서에 적힌 후두부 훼손 흔적(4×5㎝ 크기)에 대해 ‘당시 사망원인을 특정할 수 없어 타박상으로 기재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김종철씨 사체를 검안했던 문형배씨는 “5·18 조사위가 당시 사체 사진을 여러장 가져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여러가지를 묻길래 ‘당시 사체검안서는 보이는 대로 기재했을 뿐이다’고 밝힌 게 전부”라며 5·18조사위의 ‘부실 검증’을 비난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5·18진상조사위는 “1980년 5월 24일 광주시 남구 송암동에서 사망한 희생자에 대해 ‘일부에선 다큐멘터리 사진 속의 김군’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조사결과 ‘63년생 김종철씨’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는데 정작 유족들은 “우리 종철이가 아니다”고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종국씨는 이어 “종철이가 1980년 5월 25일 시내에서 환자를 수송하는 시민군 차량을 몰던 것을 봤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남구 송암동 학살’ 과정에서 숨졌다는 조사위 발표 결과를 어떻게 믿느냐”며 “국민에게 내놓는 자료를 유족 면담이나 통화도 없이 발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진상조사위는 이에 대해 “김종철씨 유족이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날을 25일로 주장한 것은 잘못된 기억”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당시 검안의에게 확인한 결과, 사체검안서에 적힌 후두부 훼손 흔적(4×5㎝ 크기)에 대해 ‘당시 사망원인을 특정할 수 없어 타박상으로 기재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김종철씨 사체를 검안했던 문형배씨는 “5·18 조사위가 당시 사체 사진을 여러장 가져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여러가지를 묻길래 ‘당시 사체검안서는 보이는 대로 기재했을 뿐이다’고 밝힌 게 전부”라며 5·18조사위의 ‘부실 검증’을 비난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