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만에 감격의 졸업장 … 99세 김덕화 할머니
2022년 05월 10일(화) 21:30
1937년 신사참배 반대로 자진 폐교…‘피아노 교사’ 꿈 접고 결혼
일흔에 피아노 독학 …14일 모교서 중·고교 명예졸업장 수여키로

1937년 폐교 직전의 수피아여학교 학생들. <수피아여고 총동창회 제공>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학교를 그만둬야만 했던 소녀가 85년이 지난 2022년 졸업장을 받게 됐다.

김덕화(99·경기도 의정부) 할머니는 오는 14일 광주시 남구 수피아여중·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수피아 홈커밍데이 행사’에 참석한다. 시대의 질곡 때문에 뜻하지 않게 학교를 떠나야만 했던 소녀가 상수(上壽·100세)를 앞두고 고향에 돌아와 빛나는 졸업장을 받게 되는 날이다. 학교측은 김 할머니에게 중·고등학교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이던 지난 1937년 수피아여학교(수피아여중·고등학교의 전신)에 재학 중이던 14살 소녀였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던 김 할머니였지만 폐교되면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수피아여학교가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자진 폐교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 둔 김할머니는 이후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영영 학교로 돌아올 수 없었으며 광주를 떠나 경기도 의정부에 정착했다.

그러나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피아노 치는 99세 할머니’로 소개되면서 김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흔의 나이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 출중한 연주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었다는 할머니의 기구한 삶도 주목받았다. 40대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7남매를 힘겹게 길러내며 살아온 것이다. 더불어 할머니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배경도 눈길을 끌었다.

김 할머니의 소식을 접한 수피아여중·고등학교 총동창회는 김 할머니 자녀들과 연락이 닿았고, 수피아여중·고등학교 및 광주시교육청 측과 협의 끝에 할머니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지금도 이따금씩 수피아여학교 교가를 부른다는 김 할머니는 명예 졸업장 수여식에 앞서 광주시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에서 개화기 언더우드 선교사의 자녀가 연주했던 오르간으로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부친 김종인 목사가 시무했던 영광 법성교회 기념관도 방문하기로 했다.

김유정 수피아여고 총동창회장은 “할머니께 졸업장을 드릴 수 있어 너무나 기쁘다. 고향을 방문하는 할머니가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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