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라는 방역 정책-박형철 전 국립소록도병원장
2022년 05월 09일(월) 23:00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대를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정부를 지지했든지 그러지 않았든지 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기대를 품는다는 점을 숨길 수 없다. 그 기대감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에서 일부 엿볼 수 있었다. 엊그제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는 문재인 정부보다 열 개 많은 110개였다. 담을 내용이 많아서, 일을 전 정부보다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내용을 대략 파악했다. 대부분 일이 그러하듯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가 혼재해 있었다.

모든 분야를 평가하기엔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고 보건의료 분야만 놓고 고민하기로 하였다. 코로나19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기에 감염병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감염병 대응 체계 고도화’란 제목이었다. 대응 체계 개편, 재유행 대비, 이상 반응 국가 책임, 새로운 팬데믹 대비 방역 체계 선진화, 감염병 위기 대응 의료 체계 개편 등을 소제목으로 각각에 부연 설명이 곁들여졌다. 새롭게 와 닿는 부분을 크게 없었다. 전부터 언론에 노출되었고 인수위 누리집에서도 종종 보았던 그렇고 그런 것으로 느껴졌다. 좀 더 눈을 위로 올려 큰 제목을 보았더니 ‘국민께 드리는 약속 01’항목 중 두 번째였다. 중요성을 시사한 걸로 판단되어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한데 막상 살펴보니 항목의 제목이 ‘상식과 공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습니다’였다. 그들은 감염병 대응 체계 고도화를 공정과 상식으로 보았던 걸까?

우리나라 감염병 대응 체계는 멀리 콜레라나 장티푸스 등 수인성 질환을 기반으로 하는 방역 체계부터 2000년 전후 호흡기 감염병 특히 메르스 대응 실패를 밑바탕으로 다듬어진 수정 보완 체계다. 수많은 시민들과 보건의료 종사자의 노고의 산물이다. 정파에 따라 몇 가지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있고, 혹자는 정치 방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방역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기에, 온전히 K-방역이 정치 방역이란 주장에는 동의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공정과 상식이란 정치의 영역에 두는 오류를 범했다. 공정에 내포된 긍정의 의미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정파 간에 다툼이 있어 더욱 그렇다. 많이 낯설어 보였다. 앞으로 이 범주에 들지 않는 감염병 팬데믹에는 정부가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감염병은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일상과 연결되고 국민의 건강권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기에 공정과 상식의 수준에서 해결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공정의 잣대로 접근하다 보면 의과학 본류를 놓치고 역으로 정치의 영역에 방역을 두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감염병은 그 자체로 문제이지만, 넓게는 시민 건강 즉 보건의료 문제로 확대하여 접근해야 한다. 코로나19에 모든 시민들이 감수성을 가지지만 감염 여부와 질병의 과정 및 결과는 감염자의 연령·성, 사회경제적 상태와 흡연·음주 등 건강 생활 습관은 물론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여부와도 밀접히 관련된다. 코로나가 다소 소강 상태인 지금은 시민들 스스로 또는 지역 사회의 도움을 받아 건강 가꾸기에 전념해야 한다. 이런 보건환경 조성에 도움을 주는 일이 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이다. 정부는 평소 시민들의 건강을 끊임없이 살펴보고 끌어 올리려는 노력을 방임하면 안된다. 국가의 행정력과 재정을 투입하고 공공보건 의료기관을 확충하거나 민간 의료기관의 공공성을 빌려 그런 노력에 적극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한 정부의 노력을 국정과제에 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통적으로 보수 정부는 공공의 영역보다 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이 정부도 누차 이런 방향을 강조해왔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공공으로 하든 민간 의료기관을 기반으로 하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비용이고 그게 동인이다. 충분한 예산 투입을 통해 민간 의료기관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이 주요한 이유다. 그러기에 정부의 정책 의지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재정 투입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실행이다.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 등을 통해서라도 방역에 민간 의료기관들의 공공성을 묶어두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보건 실패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만약 전 정부가 실패했다고 하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전 정부가 감염병을 정치 영역에 두는 것이 못마땅했다면 새 정부는 비정치의 범주로, 순수한 의과학의 영역으로 묶어 두어야 한다. 그런다면 관련 전문가들이나 시민들로부터 더 큰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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