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상실의 불안과 모방되는 욕망에 대하여-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2년 05월 09일(월) 00:30
현대사회의 특징을 가장 잘 집약한 표현은 욕망이다. 과거의 욕망은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노력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에 현대적 욕망은 많은 경우에 모방 욕망이다.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따라서 욕망한다. 그래서 무엇을, 왜 욕망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먼저 특정한 욕망을 매개하면, 이를 흉내내는 모방 욕망이 시작된다. 매개자가 특별한 위력이나 상징성을 가질수록 모방의 폭과 힘이 커진다.

요즘 화제가 된 경우가 바로 모방 욕망의 낯뜨거운 현상이다. 특정 권력을 가진 개인의 스카프·안경, 심지어 몇 만 원 한다는 저렴한 신발과 치마 등을 두고 놀라운 미적 감각과 수준을 보여 주는 ‘대사건’처럼 요란하게 보도되고, 이 물건들은 ‘완판’되었다고 한다. 이 민망한 ‘욕망의 전차’에 서둘러 올라오라는 부추김과 이를 열광하는 모습에서 자기 상실의 심각한 징후를 본다. 더 큰 문제는 다른 판단과 행위를 하는 사람들과의 경계와 단절의 벽을 쌓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눈 먼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욕망은 분명 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한 조건이자 방식이다. 욕망 없이는 변화도, 성장도 없다. 문제는 욕망의 본질과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는 모방 욕망과 그 결과다. 그리스의 신화에서 이러한 욕망의 의미를 볼 수 있다. ‘빛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파에톤은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이다. 하지만 파에톤은 스스로 빛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권세와 혈통을 통해서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 자신이 헬리오스의 진짜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태양 마차를 몰고 싶어한다. 세계의 질서를 관장하는 태양 마차는 헬리오스만 몰 수 있지만, 태양신은 아들에게 ‘아빠 찬스’를 허용한다. 파에톤은 태양 마차를 몰고 하늘을 가로지르지만, 마차의 말들을 통제하지 못해서 세상을 불바다로 만든다. 이 재앙에 분노한 제우스가 벼락을 치고 파에톤은 추락하여 죽는다. 파에톤은 아버지의 힘과 위력에 대한 모방 욕망을 통해서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권력을 욕망했을 뿐, 능력과 책임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욕망이 ‘파에톤 콤플렉스’다.

파에톤 콤플렉스의 핵심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안에서 나온다.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할수록 이 불안은 증폭되고 대처하는 수단은 맹목적이며 파괴적이다. 현대인들의 이런 심각한 불안의 이유로 알랭 드 보통은 속물근성, 기대감, 능력주의 등 몇 가지를 말한다. 이 세 가지는 오직 목표의 달성 여부가 핵심이며 과정·수단의 정당성, 목적의 가치는 안 본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세상의 인정과 평가에 대한 불안은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다른 불안으로 대체되고 증식하면서 계속된다. 자신의 소유 능력과 위치에 대한 불안이 욕망을 만들고, 욕망은 불안을 부채질한다. 이 순환 형태가 바로 능력주의라는 올가미가 작동하는 구조이다. 여기에 흔히 불안과 모방 욕망을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착각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면 지위와 소유에 대한 우리의 굴종적 자세와 자기를 부정하는 불안이 왜 문제인가. 타인의 욕망을 향한 욕망은 새로운 현대적 계급의 카르텔을 정당화하며, 신분 상승을 위한 무한 경쟁을 능력주의라 말하며, 위조된 신분으로 안착한 삶을 성공으로 간주하고 추종한다. 동시에 자신도 모방된 소비 욕망의 대열에 뛰어들고, 지위를 선점하지 못하면 무시당한다는 강박적 불안에 시달린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이 자기 회복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바로 여기에서 자신의 삶이 모방과 예속의 굴레를 벗고, 스스로 뿌리내리는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밖의 시선을 추종하는 대신에 부끄러운 일에 수치심을 느끼고 말할 수 있는 자기 긍정의 건강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로마의 세네카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자는 많으나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이 말의 속뜻은, 속물적 욕망의 매개자야말로 가장 불안한 자이며, 자기 상실의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타인의 삶과 타인의 위치를 욕망하는 삶에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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