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시대’ 우리의 관심-정 유 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1년 12월 27일(월) 00:00
송년 무렵이 되면 읽고 싶었던 책들을 모아 새해에 걸쳐 읽는 버릇이 있다. 이런 작은 연례 의식을 치르기 위해 얼마 전 동네 책방에 들렀다. 오랜만에 들른 2021년 12월 서점의 풍경은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연말 고객을 겨냥해 주요 진열대에 놓인 책들을 보니 주로 경제 관련 도서 일색이었다. 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진 모르지만 동네 서점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와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에 큰 가치를 두고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본 것 같아 다소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재화의 축적에 대한 관심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및 주식 투자에 관련한 실용 서적과 특히 트렌드 분석서는,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부터 이미 4차 산업혁명 및 경영·마케팅 등의 지식서로 꾸준히 참고되고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불확실한 지속성을 경험하면서, 돈 벌기에 관한 책은 우리 사회에서 마치 국민 수험생의 참고서 수준으로 활용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12월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올해 경제·경영 분야 단행본 도서가 41년 만에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독서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투자·재테크 분야 도서와 주식·증권 분야 도서 판매가 크게 증가되면서 도서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좀 더 비약을 하자면 국민 대다수가 주식 열풍에 휩싸이면서, 이제 주식을 안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상식이 되고, 어린 돌쟁이들에게 주식을 선물하는 사회가 되었다. 시장이 부추기는 위기 의식과 경쟁 의식에 휩쓸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는 강박감은 이제 모두가 함께 앓게 된 또 다른 전염병이 된 것이다.

인정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돈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근면함으로, 과거 어려웠던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을 보다 빨리 개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 우리 삶의 최대 관심이 돈이 되어 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위기는 우리에게 분명 또 하나의 기회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위기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들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아니라, 팬데믹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감을 놓지 않으면서도, 그가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요즘 나는 살던 동네에서 잠시 멀리 나와 독일을 찾았다. 아파트 하나 없는 중심가와 주택가를 걸으며 도시 전체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데 새삼 놀라고 있다. 오래된 건물의 두꺼운 벽 때문에 인터넷 연결은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 이 추운 겨울에도 기어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 띄엄띄엄 다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길을 나서기 전부터 노선 시간표를 미리 챙겨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이 곳 삶의 불편함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20년 전부터 알고 있는 가게 주인은 변한 것 없는 그 가게에서 딱 20년만큼 더 늙어 있었고, 더 여유로운 모습으로 손님을 맞았다. 그렇다고 이곳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만 있다는 건 아니다. 이들이 돈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다른 곳에서 사는 이들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많은 문제를 떠안고 다가오는 미래에 불안해 한다. 다만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는 그들의 관심사로 빚어낸 삶의 그림은 우리의 일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가는 곳마다 마주친 독일 사람들이 전보다 더 친절하게 느껴져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물어 보았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더 친절해졌나요?” “네.” 위기의 시대, 사회와 개인 모두에게 걱정 없는 미래란 없다. 횟수로 거의 4년차를 보내고 있는 이놈의 역병으로 콧등에 걸쳐진 마스크를 한순간도 마음 놓고 떼낼 수 없었던 올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그리고 여전한 코로나 시대에서 또 다른 한 해를 목전에 두고 있다.

퀸의 노래 제목(‘The Show Must Go On’: 쇼는 계속해야 한다)처럼 계속되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2021년, 모두가 더 애쓰고 수고한 한 해를 보냈다. 이제 다가오는 2022년, 비록 위기는 여전하지만 나의 일상을 지탱해 줄 관심거리를 찾아보는 여정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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