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하는 말-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1년 11월 16일(화) 02:30 가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던 나무들이 울긋불긋 가을옷을 입었다. 계림에서 백운까지, 광주 ‘푸른길’을 걷는다. 단풍맞이로 오늘 걷는 이 길은 낙엽 반, 사람 반이다. 아이 손을 잡은 엄마, 팔짱을 낀 중년 부부는 형형색색 단풍 터널을 지나는 사이 하나둘 단풍이 되고, 깔깔대는 여고생들의 웃는 소리에도 단풍이 붉게 들었다.
‘나도 새처럼 바람처럼 어디론가 가고 싶었어. 평생 여기서만 있었거든. 천둥 번개 눈보라에도 여기만 있었어, 나무의 꿈은 똑같아, 이파리로나마 자신을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지. 나비 떼처럼 우수수 날아가는 저 낙엽, 그건 내 꿈이야.’ 고개를 돌려보니 은행나무가 나를 보고 속삭인다.
사각사각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는다. 밟을수록 더 정겨워지는 낙엽, 사스락사스락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간지럽다. 밟힌 낙엽이 나에게 하는 말, ‘나도 열심히 살았어, 싹을 틔우고 햇볕을 받고 비바람을 견뎌내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아주 평범한 것들, 나뭇잎 하나둘이 모여 한 그루 나무가 되듯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지. 갑자기 이뤄지는 건 없어, 제일 좋은 삶은 매일 열심히 사는 게야.’
그래 맞아, 나도 맞장구를 치고 몇 걸음 나아가니 이번엔 상수리 잎이 내 얼굴을 때린다. 낙엽 왈, ‘넌 너무 무거워, 그깟 잡동사니 버렸다고 날 줄 아니, 네 안의 잡념을 버려, 집착도 탐욕도 훌훌 날려 버려, 그래야 날아가지!’
눈물 나게 맞는 말이다. 상수리 잎을 떼어 내고 몇 발자국 걷는데 갑자기 돌풍이 분다. 낙엽 무리가 윙윙거리며 한꺼번에 지나간다. ‘어느 가을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넌 그러렴. 난 썩을 거야. 내가 너의 뿌리에 닿으려면, 그래서 너의 힘이 되고 너를 온전히 사랑하려면 나를 버려 바닥까지 내려갈 거야, 두엄이 되어서 너에게로 갈 거야.’
늘 배경으로 존재하다 마지막 순간마저 기꺼이 발밑으로 깔리는 낙엽의 희생이 눈에 시리다. 슬며시 낙엽 하나를 손에 든다. 그를 바라본다. 찢어지고 갈라지고 상처투성이 그녀, 그 속에 올여름 비바람과 천둥 번개, 벌레들과 매미 우는 소리, 심지어 다람쥐 발소리까지 다 담겨있구나. 아!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서관 하나라더니 낙엽 하나가 도서관이자 우주로구나. 어느 시인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때 작은 낙엽이 나를 바라보며 하는 말, ‘너는 나보다 더 큰 우주야. 너도 나처럼 머리에 단풍이 들었군! 난 노란색인데 넌 하얗게 들었구나, 누구도 우주의 섭리를 거스를 순 없어. 그러니 너도 꼭 나처럼 낙엽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 선배로서 말해 주는데, 가져갈 건 없어, 아무것도. 이제 곧 헤어져야 해, 지금까지 수많은 이별을 했다고? 그건 연습이야. 이제 진짜만 남았어, 살았던 집도 떠나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도 물론이지. 잊지 마. 이번엔 네 몸뚱이도 두고 가야 해, 너와도 이별이야. 단단히 준비해.’
갑자기 어지럽고 춥다. 아니 인정하기 싫다. 비틀비틀 벤치에 앉는다. 늦가을 햇살이 비친다. 한 낙엽이 자기가 영화배우였다며 내 어깨를 다정하게 걸쳐 온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지, 그러면 친절하게 말을 하면 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다고, 당연히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도록 해봐.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면 돼.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라는 걸.’
그때 건너편 단풍나무도 거든다. ‘너무 걱정하지 마.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산 것처럼 당당하게 살아, 난 로맨티시스트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다 낭만 덕분이었어. 너도 낭만을 가져봐. 돈이 없지 꿈이 없냐. 낭만, 멋있지 않아. 그러니 고개를 숙이지 말고 나처럼 파란 하늘을 보며 살란 말이야.’
낙엽이 내 등을 두드리며 떠나간다. 그가 가면서 하는 말, ‘내년에 또 봐?’
낙엽 따라 걷는 길은 상념과 벗하며 걷는 길. 갈수록 더 깊어지는, 늦가을 푸른 산책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사각사각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는다. 밟을수록 더 정겨워지는 낙엽, 사스락사스락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간지럽다. 밟힌 낙엽이 나에게 하는 말, ‘나도 열심히 살았어, 싹을 틔우고 햇볕을 받고 비바람을 견뎌내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아주 평범한 것들, 나뭇잎 하나둘이 모여 한 그루 나무가 되듯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지. 갑자기 이뤄지는 건 없어, 제일 좋은 삶은 매일 열심히 사는 게야.’
늘 배경으로 존재하다 마지막 순간마저 기꺼이 발밑으로 깔리는 낙엽의 희생이 눈에 시리다. 슬며시 낙엽 하나를 손에 든다. 그를 바라본다. 찢어지고 갈라지고 상처투성이 그녀, 그 속에 올여름 비바람과 천둥 번개, 벌레들과 매미 우는 소리, 심지어 다람쥐 발소리까지 다 담겨있구나. 아!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서관 하나라더니 낙엽 하나가 도서관이자 우주로구나. 어느 시인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때 작은 낙엽이 나를 바라보며 하는 말, ‘너는 나보다 더 큰 우주야. 너도 나처럼 머리에 단풍이 들었군! 난 노란색인데 넌 하얗게 들었구나, 누구도 우주의 섭리를 거스를 순 없어. 그러니 너도 꼭 나처럼 낙엽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 선배로서 말해 주는데, 가져갈 건 없어, 아무것도. 이제 곧 헤어져야 해, 지금까지 수많은 이별을 했다고? 그건 연습이야. 이제 진짜만 남았어, 살았던 집도 떠나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도 물론이지. 잊지 마. 이번엔 네 몸뚱이도 두고 가야 해, 너와도 이별이야. 단단히 준비해.’
갑자기 어지럽고 춥다. 아니 인정하기 싫다. 비틀비틀 벤치에 앉는다. 늦가을 햇살이 비친다. 한 낙엽이 자기가 영화배우였다며 내 어깨를 다정하게 걸쳐 온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지, 그러면 친절하게 말을 하면 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다고, 당연히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도록 해봐.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면 돼.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라는 걸.’
그때 건너편 단풍나무도 거든다. ‘너무 걱정하지 마.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산 것처럼 당당하게 살아, 난 로맨티시스트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다 낭만 덕분이었어. 너도 낭만을 가져봐. 돈이 없지 꿈이 없냐. 낭만, 멋있지 않아. 그러니 고개를 숙이지 말고 나처럼 파란 하늘을 보며 살란 말이야.’
낙엽이 내 등을 두드리며 떠나간다. 그가 가면서 하는 말, ‘내년에 또 봐?’
낙엽 따라 걷는 길은 상념과 벗하며 걷는 길. 갈수록 더 깊어지는, 늦가을 푸른 산책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