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이순신은 누구인가?-고광섭 목포해양대 해군사관학부 교수
2021년 11월 05일(금) 00:30
지난 10월 26일은 424년 전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날이다. 이날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 해역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해전에서 이순신 휘하의 조선 수군은 열 배 이상의 해군력을 갖춘 왜 수군에 맞서 결사 항전으로 왜적을 대파했다. 이 불가사의한 해전은 ‘불멸의 해전’ 또는 ‘명량대첩’으로 불리며 세계 해전사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다. 명량해전은 수년 전 영화 ‘명량’이 170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국민의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영화가 개봉된 해의 명량대첩 축제에는 개최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아산 현충사 방문객은 전년 대비 무려 3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는 기록도 있다. 영화 ‘명량’의 후광 효과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숭고한 삶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에게 충무공 이순신은 누구인가? 이순신은 조선의 바다와 강토를 불법 침입하여 온갖 만행과 분탕질을 저지른 왜군들에 대하여 ‘섬나라 오랑캐’ 또는 ‘간교한 적도’ 등으로 칭하고 철천지 원수로 인식하며, 조선 바다에서 적을 쫓아내기 위해 임진왜란 첫 해전인 옥포해전부터 노량해전까지 죽기를 각오로 싸워 나라를 구한 불멸의 영웅이다. 일찍이 이충무공 전서를 국역한 노산 이은상은 이순신을 추상적·관념적 애국심의 표적인 우상적 존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대적·과학적 방법에 의해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 생동하고 실천되어야 할 존재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 우리는 2년에 걸쳐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팬데믹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424년 전 울돌목 해역으로 몰려오는 엄청난 왜 수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열세 척 전선으로 맞선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상황과 다를 바 없는 형국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일상생활을 포함해 사회 전반의 운영 체계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질서 속에 살고 있다.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우면서도 한편에서는 공습에 파괴된 인프라와 시설물을 복구하고 조심스러운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형국인 것이다. 전시 국가 동원 체제 하의 비상시국이나 다름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누구도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온 국민이 각자의 위치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와 방역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생활하는 이유다.

이 충무공 연구와 정신 계승에 길잡이 역할을 했던 노산 이은상의 주장처럼 이순신을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 찾는다면 이 시대의 이순신 같은 영웅은 누구일까?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팬데믹 상황 극복과 퇴치를 위해 불철주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의료인, 지속되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소상공인, 정상적인 생활을 반납하고 불편함을 감내해 온 보통 사람들이 오늘날의 이순신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11월 1일부터 코로나19 방역 체계를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전환한 정부의 방역 정책도 이 시대 수많은 이순신들의 협조와 헌신이 낳은 결과라 본다.

우리는 수년 전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보며 조선의 바다를 불법 침략하여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했던 왜적들을 수장시킨 민족의 영웅 이순신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충무공의 승리 해전 중에서도 명량해전이 으뜸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열악한 전장 환경 속에서 승리를 했다는 데 있다.

비록 방역 체계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일상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는 수많은 이순신들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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