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깨어나라! 광주여-김정희 전남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2021년 10월 28일(목) 06:00

김정희 전남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1980년 5·18 이후 40년이 지난 광주의 오늘은 어떠한가? 망월동 국립묘지가 성역화되면서 정치인들의 발걸음만 잦아졌을 뿐 광주는 아직도 그 절박하고 비참한 시간 속에 멈춰 있다. 우리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면 광주는 영원히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광주의 오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산 자들의 상충된 이해관계에 얽히고설켜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역겹다. 이들의 속마음은 뻔하다.

망월동 성전을 욕되게 하는 자는 광주 시민이 아니라고 단죄까지 내렸던 날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제 광주가 한풀이 장소로 더는 이용되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한 맺힌 넋을 무차별 받아들여서도 안 될 것이다. 지난날 제도권과 재야 정치인 모두가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광주를 이용하고 버렸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호남 사람 과격하다고 비난하고 왕따 시킨 일들이 엊그제이고, 청년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어제 같건만, 어찌 벌써 망각하고, 또 다시 찢김을 당하려고 하는지! 광주여 이제 깨어나라! 힘이 있고 없는 차이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의 속성은 거의 비슷하다. 이들의 간교한 술책과 기만에 의해 광주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닫혀졌다손 치더라도 그 마음 또한 결국 더 나을 것은 없다.

역사의 위기는 인과론에 의한 과학적 인식을 통하여 풀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둠과 빛의 통로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찾아야 한다. 물이 역류할 수 있듯 때로는 우리의 역사도 퇴보할 수 있으며, 시곗바늘이 멈추듯 때로는 우리의 역사도 전진 아닌 정지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 속에서 서로 소통해야 한다. 만남 속에서 미움도 사랑도 생기고,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오해도 이해도 생길 수 있다.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기 위한 결정의 순간에 이제 광주 사람 스스로가 힘의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의 상처를 수용함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경청하는 자세로 광주의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또한 광주 망월동에 묻힌 영혼들을 위로하려면 이제 우리 모두는 인격의 단순성과 용서를 배워야 하며, 그 단순성과 용서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궁핍과 충만이 대립되고, 죽음과 죄책감이 대립되는 순간에 진정 필요한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품어 안아 주는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성과 폭력이 더 증폭된 오늘의 세상 속에서 용서의 필요성은 아주 높게 요구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고 용서 없이는 어떤 정의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에게 총을 겨눈 자를 용서하였다. 용서는 불의와 폭력의 원인이 되는 고리를 끊어 내는 것이며, 화해는 폭력과 불의의 마귀 영역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용서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악을 없었던 것으로 지우는 어리석은 단순성이 아니다.

용서는 강박성이 아니다. 분노를 억제하는 것은 오히려 갈등과 적개심만을 키울 수 있다. 분노는 무력감에 빠질 수 있고 또 의기소침해질 수 있으며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그러나 용서는 용기와 지혜와 더불어 악(惡)을 선(善)으로 바꾼다. 용서는 오히려 우리의 기억에서, 우리의 영혼에서 그리고 가끔 우리의 육신에서 괴로웠던 깊은 불의를 제거하는 것이다.

용서하는 것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다. 용서하는 것은 나쁜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미래를 개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용기와 많은 힘을 요구하며, 성숙함을 의미한다.

이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거짓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 진리를 말하게 하고, 좌절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으며, 실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일깨우고,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주며, 근심이 있는 곳에 기쁨을 만들게 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노래’처럼 예향의 도시 빛고을 광주여! 연민과 사랑을 통한 줄기찬 도전으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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