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
2021년 10월 01일(금) 02:00
“흉년이 되면 입 하나 덜기 위해 어린아이를 버리기 일쑤였다. 원치 않은 아이를 낳았을 때, 청계천에 유기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실린 내용이다. 이처럼 조선 후기 서민들은 흉년과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자식마저 버리는 일이 잦았다.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아기들을 개천이나 다리 밑에 유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현대에서도 갓 태어난 영아나 유아를 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대부분 미혼모이거나 20~30대 젊은 부부 또는 연인들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저지른 패륜이 많은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출산이 진행된 것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이다.

조선시대에는 버려지는 아이에 대한 문제를 왕이 직접 관리하는 중대 사안으로 취급됐다. 목민심서 ‘애민’ 편에는 “명종 3년에 굶주린 백성의 버려진 아이를 다른 사람이 거둬 기를 경우 영구히 그 기른 사람에게 속하도록 한 옛 법을 지키도록 거듭 명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헌종 3년 정월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기르도록 전국 각지에 유시했다”는 내용도 함께 기록돼 있다. 특히 ‘속대전’에 규정된 “흉년에 버려진 아이를 다른 사람이 거두어 길러서 자식을 삼거나 노비를 삼는 것을 허락하되, 어린아이의 연령과 거두어 기른 시일의 기한을 정하는 문제는 전부 규정에 따른다”처럼 입양이나 노비로 삼을 경우의 조건이나 규칙도 있었다.

정조대왕은 버려진 아이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왕은 암행어사를 파견하면서 “지난번에 내가 버려진 아이가 있으면 거두어 기르고 기른 아이들의 수를 매월 보고하도록 일렀다. 수령된 자가 마음을 다해 실행하고 있는지, 버려진 아이를 키우라고 관가에 보낸 곡식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조사하라”는 밀지(密旨)를 내리기도 했다.

얼마 전 여수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린 비정한 20대 여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하지만 이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닌 듯하다. 국가가 버려진 아이를 직접 양육하거나 나아가 부모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 선진국처럼 법적 절차를 거쳐 사회복지시설에서 양육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때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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