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위한 사회적 상상력 -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서부지역본부장
2021년 07월 29일(목) 06:00
영국의 동물학자 테즈먼드 모리스의 명저 ‘털 없는 원숭이’는 우리 인간종의 행동 양식을, 신랄하지만 객관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과학적 보고서이다. 모리스의 분석은 다음 질문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그저 뇌 큰 원숭이에 불과한가? 인간은 재와 진흙으로 버무린 유기물 덩어리 속에 그저 몇 개 별 부스러기만을 간직한 존재인가. 필멸자인 주제에 신이 되려는 교만한 야심가인가.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겸손한 탐험가인가.

맹자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네 가지로 ‘약자에 대한 연민, 부끄러움을 아는 것, 양보하는 자세,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말하였다. 샤르트르는 인간은 ‘꿈틀거리는 존재’라고 하였다. 꿈틀거린다는 것은 부조리에 대해 저항하거나, 각성하여 주체적으로 실존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동물과 특히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가 상상력이다.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동영상 시청이나 전자결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4단계 자율주행차나 하늘을 나는 ‘플라잉 카’의 실용화도 그리 멀지 않았다. 신축 아파트는 스마트 홈, 기업은 스마트 팩토리, 새로 짓는 도시는 스마트 시티를 구현 중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테드 창의 SF소설에 나오는 복제인간의 출현도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전부 기술적 상상력 혹은 과학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이렇듯 기술적 상상력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사회적 상상력 혹은 집단적 상상력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가령 작업 환경이 위험한 공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인명 사고가 날 것으로 예상하여 이를 방지하는 데 사회적 상상력이 동원된다. 사회 속 인간 행동은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안전 조치가 미흡한 철거 작업은 매우 위험하고, 음주 운전을 하면 사고 발생 확률이 대폭 높아지며, 운전자의 시야를 막는 불법 주차 차량은 교통사고를 초래한다거나, 집단 모임에서 감염병 확산이 더 대규모로 일어난다는 인과 따위가 그렇다. 사회적 상상력은 구성원 서로 간 영향을 끼치는 법령·정책·단속 등 각종 시스템과 구성원의 보편적 문제 인식과 결부된다. 빈곤한 상상력,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 먼 상상력은 안일과 무책임으로 이어져 결국 소중한 인명을 해치게 된다.

사회적 상상력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선견(先見)하고 맞춤하게 대응함으로써 유용하다. 아직 닥치지 않은 재해를 근심하여 대비하는 직원은 훌륭하다. 탁월한 정책 결정자들은 정책 결정 전에 그 작용과 부작용을 정확히 도출 또는 예견해 낸다. 뛰어난 리더도 그렇다. 이러한 사회적 상상력은 종합적 분석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며 피해자의 처지를 보듬는 것까지 포함한다. 요컨대 사회적 상상력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처지에 공감하고, 사고 발생과 관련된 ‘다면적 미리 보기’를 통해 사고를 예방하는 기능으로 작동한다.

차를 도로에 불법 주차하기 전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얼마인가.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와 그 가족은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모 연구소에서는 지난 3년간 불법 주정차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가 약 4700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인간은 상상함으로써 동물과 다를 뿐 아니라 기술적·사회적 상상력의 총합을 통해 진화한다. 사회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꾸준히 갱신해야 하며, 지역 각 공동체의 합일된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상상력은 약자 보호, 안전에 대한 적극적 합의, 행복의 실체적 실현 같은 결과로 나타나고, 배우고 공부하는 인간 ‘호모 에루디티오’와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의 결합으로 촉발된다. 사회적 상상력의 확장과 연대를 통해서만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사회, 행복한 미래’가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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