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선을 넘는 위원회-이봉수 현대계획연구소
2021년 07월 26일(월) 05:00
월권은 자신의 권한 밖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말한다. 순우리말로는 막부림이라고 한다. 직권 남용과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에 많이 쓰이는 말이다.

얼마 전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광주 도시계획위원회 선정에 대한 많은 보도가 있었고 최근에는 이해충돌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시는 도시개발과 관련된 위원회뿐만 아니라 모두 140여개 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위원회는 일반적으로 늘어나는 행정 기능과 수요에 대응하여 관련 전문가를 행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전문 지식의 도입, 공정성 확보, 이해관계 조정, 각종 행정과 정책의 통합·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최근 각종 위원회에 대한 주민과 사업 시행자들의 민원이 많아지고 있다. 비전문가 위원, 과도한 재량권 행사, 일관성이나 형평성 없는 판단, 심의 사항과 관련 없는 불필요한 의견 제시 등으로 인한 많은 민원과 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는 자문 기구이지 의결 기구가 아니다. 하지만 마치 결정 기구인 양 권위의식과 무소불위의 의견을 제시하고, 행정은 이를 받아들여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이 사실상 자신들이 판단해야 할 중요한 결정 권한을 위원회에 위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의 계획 재량과 판단이 중요하다. 모든 사항을 전문가 집단인 위원회에 판단을 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원회는 개인의 학문적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법률적·객관적 사실을 전제로 그 안건이 사회와 도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심의하되, 쟁점이 되는 사항에 대한 집중 심의가 필요하다. 특히 공익과 사익의 비례의 원칙에 기반한 수용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토부에서는 지방도시계획위원회, 경관위원회, 건축위원회 등 도시개발과 관련된 위원회에 대해, 운영과 심의 과정상의 가이드라인들 제정하고 이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효율적인 심의를 위해 핵심 또는 중점 검토 사항 위주로 단순화하는 심의 체크리스트를 제시하여 심의 범위를 한정하고, 심의 자문기구로서의 역할 및 범위와 한계를 명시하고 이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위원회의 범위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의견으로 제시하고, 이를 재심의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일어난다.

물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단계별 절차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한 위원회에서 다 검토한다면, 절차별로 다양한 위원회를 두는 게 무의미해진다. 결국 옥상옥을 계속 만들어 놓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각각의 위원회가 한두 명 소수의 위원에 의해 위원회 원래 목적과 취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리고 위원회 전체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라면 이게 바람직한 위원회의 운영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도시계획과 개발의 수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사익과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들 혹은 관심을 만들어 내고 싶은 사람들 등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의견을 내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여론을 형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도시나 건축 등 개발과 관련된 행위들은 약속된 일정한 절차가 있다.

이러한 절차는 예측 가능한 일관성을 가지고 진행이 되어야 한다.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면 모든 개발 행위에 변수로서 위원회가 등장하게 된다. 절차의 과정에서 위원회나 협의체 등을 거쳐 상정한 안건에 대해 부정하고 다시 돌리는 것, 범위를 넘어서는 자문과 심의를 하는 것, 이는 각각의 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기능의 선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라남도 건축위원회는 위원회에서 다뤄야 할 내용과 범위를 사전에 행정에서 공지하고, 심의나 자문의 범위를 과도하게 넘어설 경우 행정과 위원장이 안내와 제지를 통해 위원회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 바람직한 운영방식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광주시가 최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부터 고층 아파트 건설 등 도심 난개발에 대해 지적을 받아왔는데, 이게 혹시 도시 관련 위원회들의 구성이나 운영의 문제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행정과 의회가 조례와 시책을 만들고 이를 시민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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