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비유에 또다시 고통받는 ‘5·18’-최낙은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4년
2021년 07월 20일(화) 06:00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한 방송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과 관련 “‘점령군’이 기술적이고 학술적인 용어라고 한다면, 광주민주화운동도 학술적 자료를 보고 직역해 ‘광주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덧붙여 “그런 뉘앙스로 보수 인사가 썼다면 학술적인 용어라면서 빠져나갈 수 있겠느냐”라고 되물었다.

겉으로만 보면 ‘광주반란’은 잘못된 용어라는 주장을 하는 듯 보이지만, 이 말 속에는 위험한 논리적 오류가 숨겨져 있다. 바로 ‘(미) 점령군’처럼 ‘광주반란’이 학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라는 논리다. 이 대표는 ‘광주반란’을 부정적인 용어라고 언급하면서도, 결국 ‘점령군’이라는 용어와 동등하게 비교하며 두 용어 모두 ‘학술적 용어이지만 중립적이지 않은’ 것처럼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일어난 민주화운동이고, 이를 폭력적으로 억압한 세력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5·18에 대한 학술적 자료는 기본적으로 한국어로 쓰여 있다. 따라서 이 대표의 말처럼 5·18의 명칭을 구태여 외국어로 된 사료에서 발췌하여 한국어로 번역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미국의 ‘The Civil War’를 ‘남북전쟁’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미국에서 ‘The War Between North and South’라고 바꿔 부르지 않듯이 말이다. 당연히 5·18과 관련된 학술 연구에서는 5·18을 ‘광주반란’이라는 용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이 대표의 말대로 구태여 5·18의 명칭을 외국어 명칭에서 번역하여 사용한다 해도 ‘광주반란’은 전혀 ‘직역’된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5·18민주화운동은 영어로 ‘Gwangju Uprising’ 혹은 ‘May 18th Democratic Uprising’이라고 칭한다. 이때 ‘Uprising’은 모든 형태의 ‘권력에 대한 시민의 무장 항거’를 일컫는 중립적인 용어이다. 일례로 4·19혁명 초기 학생들의 시위를 서구 언론에서 보도할 때 ‘Uprising’이라는 단어를 썼던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반란’은 사전적으로 ‘사회나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대규모의 집단적 행동’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통용된다. 법률상으로도 ‘반란’은 군형법에 명기된 중죄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영한사전의 ‘Uprising’을 보고 5·18민주화운동을 ‘광주반란’으로 번역한다면, 이는 함부로 광의의 단어를 협의로 해석한 ‘오역’이다. 특히 ‘반란’은 1990년대 이후 극우 인사들이 5·18에 대한 악의적인 폄훼와 왜곡을 위해 사용한 ‘의도된 오역’인 것을 고려하면 더욱이 ‘광주반란’은 이 대표의 말처럼 ‘직역’이 될 수 없다.

‘광주반란’은 학술적으로 사용되지도 않거니와 사용할 수도 없으며, 특히 정치권에서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이와 반대로 ‘점령군’은 당시 미군의 포고령과 신문 기사에 명기한 것은 물론 현재까지 학술 연구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용어이다.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각각 연설에서 미군 ‘점령’이라는 개념을 썼을 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점령군’이라는 개념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

반면 ‘광주반란’은 일부 역사를 폄훼, 왜곡하는 이들의 선동에 가까운 억지 조어이기 때문에 ‘점령군’과 직접 비교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 대표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잘못된 비유로 인해 극우 세력의 ‘억지 선동 조어’를 학술적인 용어처럼 언급하고 만 셈이다.

국민의힘과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점령군’ 발언을 두고 편향된 역사 인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통해 현실과 미래를 논하려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부디 이 대표의 잘못되고 위험한 비유가 그의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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