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품격, 도시 경관 - 김해경 남부대학교 초빙교수
2021년 07월 15일(목) 23:10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광주 지역 총 주택 수의 약 67%가 아파트다.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높고, 전국 평균인 53%를 훌쩍 넘는다. 아파트 층수도 2016년 평균 13.6층에서 무려 33층으로 약 2.4배 높아졌다. 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광주는 ‘아파트 숲’을 넘어 외부와 단절된 ‘아파트 장벽 도시’가 되어가는 듯하다.

전국의 부동산값이 들썩이며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실에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조망권, 일조권, 바람길 등 고층 아파트로 인해 발생하는 기본권 침해 문제뿐 아니라 주변 지역과의 시각적 부조화 등 도시 전체의 경관을 해치는 부작용은 결코 작지도, 적지도 않다.

도시 경관은 ‘도시라는 공간상에 만들어놓은 독특한 문화적, 기술적 경관’을 말한다. 예전에는 형태와 기능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의미와 상징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 달리 말해 도시민들의 정체성이자 도시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파리, 런던, 뉴욕, 로마 등을 말할 때 떠오르는 개성적인 각각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 경관이 또 하나의 도시 경쟁력이 되면서 우리나라도 2007년에 ‘경관법’을 제정했고,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는 의무적으로 경관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광주시는 2018년에 ‘2030 경관계획’을 발표했다. ‘여유와 활력이 공존하는 품격을 지닌 문화경관 창조도시’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송정역세권,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영산강, 무등산 등 경관을 중점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구역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왜 2021년의 광주는 ‘아파트 장벽 도시’가 되어가고 있나.

얼마 전 한 방송사가 광주의 고층 아파트 문제를 다룬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여러 전문가들은 ‘건축 심의가 일관성이 없고 객관성도 결여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도시 설계 계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외국에서는 모든 건물의 높이, 형태, 위치, 심지어 지붕 모양, 창문 위치, 벽면 재료까지 모두 도시 설계를 해놓는다’고 한다.

영국 런던은 도시 개발 지침 ‘런던 플랜’을 만들어 ‘도시, 강, 거리’라는 세 가지 조망으로 건물 높이를 규제한다. 덕분에 약 16㎞나 떨어진 리치몬드공원에서도 런던을 대표하는 세인트폴성당의 돔을 볼 수 있다. 특히 시장은 개발로 인해 압력을 받더라도 이 조망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시애틀 역시 스페이스 니들이라는 전망탑이 동네의 조그만 공원에서도 잘 보이도록 조망축을 설정하여 건축물을 규제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 등도 공공디자인, 야경, 건축물 등 경관 자원을 활용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관련 서비스 산업을 발달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국내 도시들의 사정은 어떨까. 올 초부터 부산시는 보존 가치가 높은 경관 지역의 대표 조망점을 지정해 건물 높이를 규제한다. 경관 훼손을 뒤늦게나마 막자는 취지다. 울산시는 ‘태화강 국가정원’으로 유엔(UN) 해비타트가 수여하는 ‘2020년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수상했다. 그런 가운데 인천시는 경제자유구역 내 청라·영종·송도 등 세 곳을 국제도시로 키우기 위해 대대적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우후죽순 건립된 유사 건물들로 인해 도시 미관을 해치고 더욱이 밤이 되면 암흑 도시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란다. 언론에 소개된 그 원인은, 도시 계획을 수립하면서부터 도시 경관에 무관심했고, 아파트 용지를 매각하면서도 도시 경관을 고려하지 않고 최고가 입찰로 부지를 팔아 돈벌이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광주로 돌아와 보자. 바로 얼마 전에 광주시는 시의회에서 ‘고층 건물 난립을 막고 건축물의 높이 제한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40 도시 경관 계획’도 수립 중이라고 했다. ‘2030 경관 계획’에 대한 평가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그동안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도시 경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이제는 도시의 품격을 따져야 할 때다. 부동산 개발 중심에서 도시 경관 관리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이동시켜야 한다. 또한 법이 정한 경관 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하여 시행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시민들도 도시 경관은 함께 즐기는 공공재이자 삶의 질 향상이라는 주거 가치와 연결됨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광주시는 시장의 정치적 공약과 상관없이 런던 플랜처럼 기획 단계부터 시민들이 참여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광주만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담은 도시 경관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예향’ 광주 시민이 만드는 도시 경관은 예술품처럼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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