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와 교육개혁 논쟁-하정호 위민연구원 이사
2021년 07월 12일(월) 02:00 가가
하정호 위민연구원 이사, 광산구청 교육협력관
고교학점제는 비정상적인 우리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하나의 이정표이자 실천 과제이며 교육개혁의 뇌관이다.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도 바꾸어야 하고 학교 공간도 바꾸어야 하며 교사 양성 체계도 손보아야 한다. 당연히 입시제도도 고쳐야 한다. 그 입시를 바꾸려면 또 대학구조 개편이 불가피하고, 직업교육과 평생교육까지도 뜯어고쳐야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뒷받침해낼 수 있다. 그러려면 당연히 고등교육과 직업교육, 평생교육 예산도 대폭 증액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답답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교육계 일각에서 고교학점제 반대 서명을 주도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이제라도 서두르자는 것과 그러니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이다.
고교학점제라는 뇌관에 불을 댕길 때 그 폭발력이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앞서 말한 모든 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을 수도 있고, 그저 이미 진행하고 있는 단위제 수업의 변형 정도로 그칠 수도 있다. 학교의 안팎이 서로 어울리면서 수업을 다양화하고 평생교육과 직업교육, 고등교육과 중등교육이 상생하는 토대가 되어줄 수도 있고, 여전히 교사와 교과목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19세기나 20세기 교육을 계속 되새김질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고교학점제가 고교 교육을 파행시킬 것이라는 교사들의 우려에도 설득력이 있다. 교육 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고교학점제가 추진되는 면도 있다. 교사나 학생, 학부모 모두 입시제도의 피해자였는데 입시제도의 개혁 없이 현장 교사들에게만 수업과 행정의 부담을 모두 지우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를 동의하는 입장에서는 그 부담까지도 학교의 안팎이 서로 나눠지면서 학생 중심의 다양한 교육을 펼쳐보자고 제안한다. 교육을 바꾸는 것은 교사들의 몫이지만, 교사가 이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고 손을 내밀 때, 당신들은 교육전문가가 아니니 그럴 수 없다고 막아서지는 않기를 바란다.
고교학점제는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오는 뇌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교사들의 안정적인 지위를 흔들고 교육과정을 흔들고, 학생들의 일상을 흔들고, 학교 밖의 교육 자원들이 학교를 먹잇감 삼아 달려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흔들림 없이 우리 교육이 방향을 잡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교육현장은 그런 흔들림조차 거부할 만큼 신뢰를 주고 있는가? 교사들은 입시제도의 개선 없이 고교학점제를 할 수 없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수업을 개발하고 수능 위주의 문제집 풀이를 넘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런 약속이라도 할 수 있는가? 지금의 교사들은 ‘입시제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젖어서, 이제는 입시제도를 바꾸려는 시도마저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입시 개혁을 위해서는 서열 경쟁 자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전국의 모든 국공립대와 주요 사립대를 포괄하는 공동 입학제를 통해 매년 15만 명의 고교 졸업자들이 과도한 경쟁 없이 입시를 치르게 하는 데 연 4조 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고 한다. 5조 원으로 잡아도 정부 예산의 1%가 못 된다. 이는 정부가 매년 대학에 투입해 온 10조의 예산을 절반 가까이 늘리는 정도이다. 매년 15만 명의 고등학생이라면 고졸자의 33~38%에 해당한다. 이 정도라면 나머지 학생들도 자신들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을까? 이렇게 대학의 포용적 상향평준화와 공동 입학제를 통해 대입 경쟁이 줄어들면, 수능을 강화해 미국식 입시를 치르든 논술을 강화해 유럽식 입시를 치르든 좋은 길을 찾아가면 된다. 중요한 건 그렇게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정치의 문제, 힘의 문제, 결단과 설득의 문제이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를 동의하는 입장에서는 그 부담까지도 학교의 안팎이 서로 나눠지면서 학생 중심의 다양한 교육을 펼쳐보자고 제안한다. 교육을 바꾸는 것은 교사들의 몫이지만, 교사가 이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고 손을 내밀 때, 당신들은 교육전문가가 아니니 그럴 수 없다고 막아서지는 않기를 바란다.
고교학점제는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오는 뇌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교사들의 안정적인 지위를 흔들고 교육과정을 흔들고, 학생들의 일상을 흔들고, 학교 밖의 교육 자원들이 학교를 먹잇감 삼아 달려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흔들림 없이 우리 교육이 방향을 잡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교육현장은 그런 흔들림조차 거부할 만큼 신뢰를 주고 있는가? 교사들은 입시제도의 개선 없이 고교학점제를 할 수 없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수업을 개발하고 수능 위주의 문제집 풀이를 넘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런 약속이라도 할 수 있는가? 지금의 교사들은 ‘입시제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젖어서, 이제는 입시제도를 바꾸려는 시도마저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입시 개혁을 위해서는 서열 경쟁 자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전국의 모든 국공립대와 주요 사립대를 포괄하는 공동 입학제를 통해 매년 15만 명의 고교 졸업자들이 과도한 경쟁 없이 입시를 치르게 하는 데 연 4조 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고 한다. 5조 원으로 잡아도 정부 예산의 1%가 못 된다. 이는 정부가 매년 대학에 투입해 온 10조의 예산을 절반 가까이 늘리는 정도이다. 매년 15만 명의 고등학생이라면 고졸자의 33~38%에 해당한다. 이 정도라면 나머지 학생들도 자신들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을까? 이렇게 대학의 포용적 상향평준화와 공동 입학제를 통해 대입 경쟁이 줄어들면, 수능을 강화해 미국식 입시를 치르든 논술을 강화해 유럽식 입시를 치르든 좋은 길을 찾아가면 된다. 중요한 건 그렇게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정치의 문제, 힘의 문제, 결단과 설득의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