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오르고 싶은 자, 부디 자신의 발로 그리하라-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1년 07월 05일(월) 03:00
사람이 매순간 느끼는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고 서로 충돌한다. 감정이라는 정서는 그 안에 수많은 지류들이 모여들어서 이루어지는 강과 비슷하다. 한 꺼풀을 벗기면 또 다른 꺼풀이 있는 것이 양파와도 닮았다. 우리 역시 좋으면서도 동시에 한 구석이 싫거나, 즐겁지만 불쾌하고 두려운 이중적인 감정을 일상적으로 겪는다. 이런 감정계의 복잡성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좋은 감정은 삶을 확장하는 기쁨의 영역으로, 나쁜 감정은 고통과 위축을 초래하는 슬픔의 영역으로 분류한다. 스피노자식 관점이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것은 감정의 주체, 즉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진짜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감정들은 위장술이 아주 뛰어나서 쉽게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다른 감정을 흉내 낸다. 특히 슬픔의 영역에 속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렇다. 우울감이 깊으면 오히려 과하게 쾌활한 행동을 하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시기와 질투가 호의와 애정으로 표현되는 것은 흔한 감정의 가면이다. 그래서 우리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명징하게 자신의 감정, ‘내 속’을 모르는 것은 인간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감정이 상황과 조건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가장 파괴적인 힘으로 삶의 생성과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원한 감정이다. 이 감정은 증오심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원한 감정은 뿌리 깊은 억울함과 원통함이 분노를 앞세우지만 그 안 쪽에는 여러 감정들이 얽혀 있는 정서다. 원한을 주체와 노예의 관점에서 철학적 주제로 다룬 사람이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다. 니체에 따르면 원한 감정의 본질은 복수인데 대부분 선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그래서 니체는 “저들이 정의롭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듣노라면, 그것은 언제나 나는 앙갚음을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라고 말한다.

즉, 원한이 노예가 주장하는 도덕적 가치의 본질 감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노예는 역사상 있었던 실제 노예나 또는 현실에서 사회적 모순과 구조의 불합리성으로 억압과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삶, 생각과 판단에 있어서 주체나 주인이 되지 못한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들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예는 자기 연민과 무력함으로 굳어진 원한을 정의로, 복수를 도덕의 회복이라고 말하는 원한 감정에 지배당한다. 이들의 깃발은 언제나 과거를 향하며, 같은 무리를 불러 모으는 것으로 승부하려 한다. 그렇기에 미래를 염려하여 계획하고 책임지며 삶의 가치를 확장해 내는 주인의 삶은 없다. 원한은 과거의 유산이지 미래에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원한은 보편의 가치를 악으로 규정하면서도 정면 승부를 할 수 없을 때 밀려오는 무력감이 겹겹이 굴절된 것이다. 노예는 자신을 부당하게 억압받는 자의 자리에 위치시키면서 원한 감정을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위장하고 한 패가 아니면 누구든 공격한다. 그래서 기득권 유지와 지배 욕망에 포획된 노예의 복수는 언제나 패와 세를 수단으로 하는 전체주의적인 폭력의 행사다.

결국, 노예는 스스로 판단한 자기 명령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없으며, 노예의 감정은 자기 존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저급한 감정들이다. 정의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사실은 저급하게 뒤틀린 욕망·질투·열등감·증오·분노등의 혼합물인 것이다. 이런 감정들에 지배당하는 한 아무리 주인 옷을 겹으로 입은들 외투 안의 노예근성은 그대로다. 노예의 도덕은 개인의 영역과 공적 영역에서 모두 나타나는데, 특히 공적일 경우의 위험성은 더욱 파괴적이다. 빈 그릇을 요란하게 두들기는 많은 노예들의 유사 정의감과 헛된 공명심을 조심해야 할 시절이다.

이와 달리 주인의 조건은 스스로 가치 있는 명령을 내리고 이에 기꺼이 순명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주인의 길을 가는 사람은 타인의 등과 머리 위에 앉아서 안락하게 가려고 하지 않는다. 주인으로서 자기 명령에 따르는 길을 높이 오르며 미래를 향해서 멀리 가려는 자, 그가 누구이든, 공적이든 사적이든, 자신의 발로 그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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