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나무-김경련 아동문학가·고려중학교 교사
2021년 06월 24일(목) 05:00 가가
아이들은 모두가 순수하다. 남중학교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함께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내게 언제 그런 선입견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싹 사라졌다. 씩씩하게 다가와 큰 소리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내 안의 긴장이나 우울감마저도 치유받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책상 앞에 혼자가 되는 시간이면 매일 다짐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라고, 이 말은 스스로 정한 나의 다짐 같은 것인데 나름 효과가 커서 고수하고 있다.
특히 질문을 받는 순간에 이 다짐은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 어느 날인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도덕 시험 범위 어디까지인가요?” 이 순간 “야! 너…” 하고 나머지 전체 아이가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한 학생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잠시 어리둥절하며 질문한 학생을 보니 얼굴 표정이 거의 빨갛다 못해 노랗게 보일 정도였다. 알고 보니 친구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던 이유는 내일이 바로 시험 날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의 다짐’이 떠올랐다. “아, 언제라도 모르면 물어볼 수 있지요. 시험 범위는 47페이지까지입니다.“ 내 말에 교실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한 학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덕 선생님 진짜 착하시다.” 교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그래, 어쩜 빛나는 것 보다 중요한 건 시들지 않게 하는 건지도…’ 그날따라 교정의 나무들이 나를 보고 응원이라도 하는 듯 햇살 아래 더 반짝였다.
나무를 보면 웃자란 가지도 모두 똑같지는 않다. 그걸 좀 더 모양새 있게 정리해 주는 것은 정원사의 마음이다.
하지만 사람은 나무처럼 일정한 크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좋은 쪽으로든, 혹은 안 좋은 쪽으로든, 그래서 어렵다. 순간순간 상황이 달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바로 그 자리에서 생각하고 결정해서 옮겨야 할 때가 많은 것이다.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학교에 오면 엎드려 잠자거나 옆 친구에게 말을 걸고 수업을 방해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준성아, 자세 바르게 하자.”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아이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교사라도 나도 사람인지라 인내에 한계가 느껴졌다.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마음속은 복잡했다. 혼내고 야단을 쳐야 하나 계속 부드럽게 대해야 하나. 어쩔 땐 그 아이가 미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들어가려는데 마이크 본체가 안 보였다. 수업 시간은 시작되고 순간 당황한 나는 ‘어느 반 교실에 두고 왔더라…’ 생각하며 복도에서 잠시 헤매고 있었는데 3층 끝에서 누군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준성이었다. 나는 그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화들짝 놀라며 준성에게 갔다. 준성이 손에 동그란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교무실에 갔는데 선생님이 안 계셔서 한참 찾았어요.” 코로나만 아니면 다가가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작은 감동이었지만 그 후 나와 준성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다리라도 이어진 듯 조금씩 가까워졌다. 물론 준성이의 수업 태도는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내 마음이 달라지니 아이도 달라보였던 것이다.
정원이 아닌 교무실 뒤편 산에서 자란 나무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조금 웃자라면 어떤가, 조금 삐져 나가면 또 어떤가. 어떻게라도 나무는 자란다. 하물며 움직이는 사람 나무임에랴. 단점도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다면, 그래서 한 명 한 명 빛나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인내는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언젠가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특히 질문을 받는 순간에 이 다짐은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 어느 날인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도덕 시험 범위 어디까지인가요?” 이 순간 “야! 너…” 하고 나머지 전체 아이가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한 학생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잠시 어리둥절하며 질문한 학생을 보니 얼굴 표정이 거의 빨갛다 못해 노랗게 보일 정도였다. 알고 보니 친구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던 이유는 내일이 바로 시험 날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의 다짐’이 떠올랐다. “아, 언제라도 모르면 물어볼 수 있지요. 시험 범위는 47페이지까지입니다.“ 내 말에 교실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한 학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덕 선생님 진짜 착하시다.” 교실을 나오며 생각했다. ‘그래, 어쩜 빛나는 것 보다 중요한 건 시들지 않게 하는 건지도…’ 그날따라 교정의 나무들이 나를 보고 응원이라도 하는 듯 햇살 아래 더 반짝였다.
하지만 사람은 나무처럼 일정한 크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좋은 쪽으로든, 혹은 안 좋은 쪽으로든, 그래서 어렵다. 순간순간 상황이 달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바로 그 자리에서 생각하고 결정해서 옮겨야 할 때가 많은 것이다.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학교에 오면 엎드려 잠자거나 옆 친구에게 말을 걸고 수업을 방해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준성아, 자세 바르게 하자.”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아이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교사라도 나도 사람인지라 인내에 한계가 느껴졌다.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마음속은 복잡했다. 혼내고 야단을 쳐야 하나 계속 부드럽게 대해야 하나. 어쩔 땐 그 아이가 미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들어가려는데 마이크 본체가 안 보였다. 수업 시간은 시작되고 순간 당황한 나는 ‘어느 반 교실에 두고 왔더라…’ 생각하며 복도에서 잠시 헤매고 있었는데 3층 끝에서 누군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준성이었다. 나는 그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화들짝 놀라며 준성에게 갔다. 준성이 손에 동그란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교무실에 갔는데 선생님이 안 계셔서 한참 찾았어요.” 코로나만 아니면 다가가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작은 감동이었지만 그 후 나와 준성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다리라도 이어진 듯 조금씩 가까워졌다. 물론 준성이의 수업 태도는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내 마음이 달라지니 아이도 달라보였던 것이다.
정원이 아닌 교무실 뒤편 산에서 자란 나무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조금 웃자라면 어떤가, 조금 삐져 나가면 또 어떤가. 어떻게라도 나무는 자란다. 하물며 움직이는 사람 나무임에랴. 단점도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다면, 그래서 한 명 한 명 빛나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인내는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언젠가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