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되는 애그플레이션-기영윤 농협 구례교육원 교수
2021년 06월 22일(화) 05:00 가가
‘물독에 눈물이 맺히면 비’라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사용하는 집들을 찾기 어렵지만 상수도가 변변치 않았던 때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독을 채우는 일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가사 노동이었다. 이 물독 표면에 나타난 결로 현상을 조상들은 눈물이라고 했다.
물방울이 맺히는 데에는 원인이 있다. 저기압이 접근하면 기온이 올라가고, 습기가 많아진다. 이때 물독의 내부와 외부의 기온차가 발생하면서 물방울이 맺힌다. 햇볕에 고추라도 말려 두었다면 서둘러 거둬들여야 한다.
농사는 하늘과 뭇갈림이다. 그만큼 날씨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옛사람들이 과학적인 기상 예보 시스템이 발달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현상들을 통해 날씨 변화의 원인을 찾으려 한 것은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최근 각종 언론 보도를 보면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염려하는 소식이 부쩍 늘었다. 돈이 풀리면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른다. 물독에 맺힌 눈물을 보고 비를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당연한 원리다.
세계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너나없이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쳐왔다. 봉쇄 정책으로 꽁꽁 얼어붙은 경제에 긴급 수혈은 피할 수 없었다. 이제 코로나 백신 접종 등으로 경제 활동이 되살아날 조짐이 보이자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다. 원유, 철강, 그리고 농산물이 대표적이다.
소비자 측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농산물 가격 상승이다. 어지간한 품목 앞에 ‘금’자가 붙지 않은 것이 없다. 금계란, 금호박, 금대파. 그런데 농산물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국내만의, 그리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 추세라고 볼 수 있는 통계들이 발표되면서 가계 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세계 식량 가격 추이를 알 수 있는 지표가 식량 가격 지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24개 주요 식량 품목의 국제 가격 동향을 토대로 발표하는 지수다. 최근 발표한 지난 4월 기준 세계 식량 가격 지수는 120.9포인트로 전월 대비 1.7% 상승했다. 이 지수는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포인트로 삼아 산정하므로 기준 가격 대비 20% 이상 상승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세계 식량 가격이 12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공포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식량 가격 변동에 매우 민감한 국가다. 식량 자급률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2009년 56.2%를 기록했지만 2019년 45.8%로 최근 10년 사이 무려 10% 넘게 하락했다. 그나마 이 수치에는 사료용 곡물이 빠져있다.
사료용 곡물을 포함하는 곡물 자급률은 더욱 심각해 2019년 기준 29.6%에 그쳤다. 심각하게 낮은 자급률조차 쌀이 버텨 주고 있기 때문이다.
쌀을 제외하면 식량 자급률은 10%를 넘지 못하고, 곡물 자급률은 고작 3% 대에 그친다. 사정이 이러하니 라면부터 축산물 가격까지 오르지 않을 재간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상기후는 농산물의 가격 불안정성을 구조화하고 있다. 영암의 무화과는 열 그루 중 여덟 그루 넘게 얼어 버렸고, 사과며 배며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한 과수들이 지천이다. 밭작물이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품목을 넘나들며 이상고온과 이상저온의 사이에서 말라가고 있다.
안정적인 농산물의 공급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제 농산물 공급망이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다는 것을 보았다. 부족한 식량을 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지 드러나고 있다.
지금의 농산물 가격 상승은 이상기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제껏 인간의 이기심을 묵묵히 감내해 오던 생태계의 반격이다.
올해도 폭우와 가뭄, 조류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 과수화상병 등은 반복될 것이다. 예외적인 현상이라도 빈도가 잦아지면 아주 일상적인, 정상적인 상황이 된다. 구조적 문제는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물독에 눈물이 맺히면 비가 온다. 농민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으면 국민 경제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농축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한 과감한 정책 전환과 담대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조금 빠르게.
농사는 하늘과 뭇갈림이다. 그만큼 날씨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옛사람들이 과학적인 기상 예보 시스템이 발달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현상들을 통해 날씨 변화의 원인을 찾으려 한 것은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최근 각종 언론 보도를 보면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염려하는 소식이 부쩍 늘었다. 돈이 풀리면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른다. 물독에 맺힌 눈물을 보고 비를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당연한 원리다.
세계 식량 가격 추이를 알 수 있는 지표가 식량 가격 지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24개 주요 식량 품목의 국제 가격 동향을 토대로 발표하는 지수다. 최근 발표한 지난 4월 기준 세계 식량 가격 지수는 120.9포인트로 전월 대비 1.7% 상승했다. 이 지수는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포인트로 삼아 산정하므로 기준 가격 대비 20% 이상 상승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세계 식량 가격이 12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공포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식량 가격 변동에 매우 민감한 국가다. 식량 자급률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2009년 56.2%를 기록했지만 2019년 45.8%로 최근 10년 사이 무려 10% 넘게 하락했다. 그나마 이 수치에는 사료용 곡물이 빠져있다.
사료용 곡물을 포함하는 곡물 자급률은 더욱 심각해 2019년 기준 29.6%에 그쳤다. 심각하게 낮은 자급률조차 쌀이 버텨 주고 있기 때문이다.
쌀을 제외하면 식량 자급률은 10%를 넘지 못하고, 곡물 자급률은 고작 3% 대에 그친다. 사정이 이러하니 라면부터 축산물 가격까지 오르지 않을 재간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상기후는 농산물의 가격 불안정성을 구조화하고 있다. 영암의 무화과는 열 그루 중 여덟 그루 넘게 얼어 버렸고, 사과며 배며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한 과수들이 지천이다. 밭작물이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품목을 넘나들며 이상고온과 이상저온의 사이에서 말라가고 있다.
안정적인 농산물의 공급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제 농산물 공급망이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다는 것을 보았다. 부족한 식량을 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지 드러나고 있다.
지금의 농산물 가격 상승은 이상기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제껏 인간의 이기심을 묵묵히 감내해 오던 생태계의 반격이다.
올해도 폭우와 가뭄, 조류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 과수화상병 등은 반복될 것이다. 예외적인 현상이라도 빈도가 잦아지면 아주 일상적인, 정상적인 상황이 된다. 구조적 문제는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물독에 눈물이 맺히면 비가 온다. 농민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으면 국민 경제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농축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한 과감한 정책 전환과 담대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조금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