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롭게 자퇴한다-김병주 전남도 관광문화체육국장
2021년 06월 18일(금) 04:20
전남도청 공무원으로 살았던 지난 세월이 참 행복했다. 이젠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돌아간다. 시작할 때의 마음을 되새겨 본다. 1987년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학점 3.0을 넘으면 웬만한 대기업은 다 들어가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었는지 사기업은 썩 내키지 않았다.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을 더 의미 있게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고시 공부가 여러 해 걸렸다. 1996년에 가까스로 지방고시(지금의 행정고시 지역 모집)의 문턱을 넘었다.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나주시청에서 산포면장, 의회 전문위원을 경험했다. 1999년부터 전남도청 공무원으로 살았다. 투자 유치, 조선산업 팀장 등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여수 EXPO 조직위원회, 도의회 농수산 전문위원, 해외 유학,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 전남도 창조산업과장을 거쳤다. 도청 과장 자리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대로 조직을 직접 이끄는 묘미가 있다.

이에 비해 도청 국장은 직원에 대한 특성이나 역량 파악은 어렵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바꿔 놓는 역할을 한다. 조직에 자극을 주고 큰 틀에서 성과를 내도록 조율해야 하는 자리다. 의회·언론·전문가·중앙부처, 국회와 주민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정무 감각이 필요해 반(半)은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도의 정책 방향을 관철시켜 나가는 일을 한다.

책임과 상응하는 권한이 부여된다. 소리나지 않게 부드럽게 일을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조직원들에게 성공에 대한 피드백을 해 주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열심히 일한 소속 직원들을 승진시켜야 하는 책임도 따른다. 그동안 광양 기능성 화학소재 클러스터 국비 확보, 화순 미생물 실증지원센터 유치, 광양항 24열 크레인 국비 확보,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교육생 대표, 에너지 밸리 기업 유치, 한전공대 나주 유치 등에 힘을 보탰다. 순천부시장 재직 시 천만 관광객 달성 및 2023 국제정원박람회 유치, 관광문화체육국장 때는 한국토탈관광패키지(KTTP) 공모 사업 선정, 남도의병 역사박물관의 문화체육관광부 타당성 심사 통과 등을 통해 조직에 기여했다고 자평한다.

6월 17일 자로 명예퇴직하면서 지방이사관으로 승진한다. 5급으로 출발해 세 번 승진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박수 쳐 줄 때 떠나려 한다.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행복한 일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공무원은 기업과 주민들이 낸 세금을 사용하면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하듯, 의사가 환자를 친절하고 편하게 대하듯 주민과 기업인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해야 한다.

전남도청은 지금 활력이 넘쳐 난다. 하는 일마다 잘된다. 지사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더 본질적으로 보면 열심히 일한 사람이 우대받고 승진하는 공정한 인사 시스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을 좌절시키거나 일 하지 않은 분위기로 몰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쁜 인사 정책이다. 나쁜 인사 정책은 공무원들의 혁신 역량을 좌절시키고 조직 성과를 무너뜨린다.

그동안 공직 생활을 통해 어떻게 해야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지, 지방행정 조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동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주민과 기업인들이 행복해지는지를 터득했다. 지난해 7월 관광문화체육국장으로 올 때 “업무에 대한 신속한 파악과 추진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사고 방식으로 조직을 자극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능력이 있다”는 광주일보의 인사평을 받은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 리더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적기에 내려야 한다. 그래야 시민이 편하다. 그리고 갈등을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

무너지는 둑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막았다는 네덜란드 소년 이야기가 있다.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을 제때 하지 않아서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공직 후배들이 꼭 가슴에 새겨 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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