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초에 가면 보인다 - 전동호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2021년 06월 10일(목) 06:30
팽나무 십리 길이 생겼다. 740여 그루가 산책로를 가운데 두고 두 줄로 만났다. 섬에 있는 귀하고 좋은 것들은 이제껏 밖으로만 나갔는데, 뭍에서 들어오는 기적을 보여줬다. 큰 차에 하나씩 실려 배에 오르고 크레인도 거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말 없이 고향을 지켜온 100년이 넘는 재목들이었다. 그 수구초심이 어디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했다. 높은 가지 사이로 드문드문 햇살이 내린다. 아직은 미완성이다.

신안 도초도의 최근 모습이다. 바닥에선 수국이 한창 뿌리 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하천 수로와 작은 농로가 나란히 이어지고, 반대쪽엔 모내기를 마친 반듯한 논들이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언덕 위의 작은 초막이 흑백 영화 ‘자산어보’의 촬영지다. 고갯길을 오르니, 큰 바다 위로 소의 귀를 닮았다는 우이도와 어린 섬들이 보인다. 옅은 해무가 옛 돛배를 불러오는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우이도(牛耳島)는 손암 정약전(1758~1816)이 가거댁 순매와 말년을 보낸 곳이다. 약초와 좁쌀로 빚은 막걸리를 벗 삼아 흑산도를 오가며 16년을 살았다. 흑(黑)은 어둡고 두렵다며 빛이 보인다는 자(玆)로 바꾸고서,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도감 ‘자산어보’을 집필하고 복성재(復性齋)를 열어 학동을 가르쳤다. 이렇게 그의 정신은 이어지고 있지만 관리가 너무 소홀하다. 손암이 순매와 낳은 아들, 학소의 후손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금계국(金鷄菊)이 지천이다. 토종 들꽃을 다 밀어냈다. 비탈면을 따라 예쁘게 보이기는 해도, 우리 생태계를 어지럽힌다. 식용 황소개구리,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같은 상황이다. 필요하다며 수입하고 장려할 때는 언제고, 그저 잡아내고 없애고 뽑아내기만 반복할 뿐 책임 지는 사람은 없다. 절개지에 사용하는 녹생토 역시 마찬가지다. 이젠 우리 야생화 종자를 개발해서 널리 보급할 때가 되었다.

도초도(都草島)는 그 이름처럼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십여 년 전, 전남도에서 ‘사파리 아일랜드’를 계획했던 곳이다. 부지 매입까지 이루었지만, 세월이 가며 흐지부지됐다. 동물 복지를 시험하는 곳으로, 종(種)을 연구하고 보호하는 곳으로 변환시킬 수 있었는데도 기회를 놓쳤다. 거기 담벼락 안의 고양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10여㎞ 거리의 추포~비금 바닷길을 연결하면 되지만, 착공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암태 남강여객선터미널에서 비금 가산항까지 먼저 간다. 한 시간에 한 번, 40여 분 거리다. 아침 5시 반부터 하루에 16번, 밤 10시에 마지막으로 나갔다가 돌아온다. 압해~암태 천사대교가 개통되며 야간 뱃길 운항이 낳은 변화다.

이어지는 찻길을 따라 덕산바위와 대동염전을 지나 섬초가 오가는 서남문대교를 건넌다. 1996년 여름에 개통한 937m의 해상교량이다. 너무 돈을 적게 들이다 보니 폭은 좁고 처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15톤 덤프트럭이 짐을 알맞게 실어도 지날 수가 없다. 법을 어기든지, 도선을 다시 해야 한다. 찻길로 차가 다닐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빨리 고쳐줘야 한다.

갯바람을 막는 대발은 여전하다. 애기동백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다. 시목해변의 모래알처럼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계속 발굴해 나가면 좋겠다.

다른 섬에서도 안락한 땅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변신이 계속되고 있다. 12사도 길, 퍼플교, 조각품과 수석·분재 등 각종 박물관, 나무와 꽃이 새로운 일상을 펼쳐낸다. 그 끝은 어디일까? 세계교량센터나 바다낚시터, 해양리조트, 마리나, 흑산공항 등의 풍광이 더 필요하다. 홍어가 제 길을 가듯이 신안이 꼭 지나야 할 길이다. 낙후·소멸·저출산을 넘어 사람들이 몰려오는 반석이 될 것이다. 여기저기 해변에서 말을 달리는 남녀노소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생은 아름다워’ 라디오 프로그램이 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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