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주머니’
2021년 06월 07일(월) 02:15
고사성어 ‘금낭묘계’(錦囊妙計)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래됐다. 비단 주머니 속에 담긴 기묘한 계략이라는 뜻이다. 오나라 장수 주유는 야심을 가진 유비와 책략가인 제갈공명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유비를 오나라 왕손권의 여동생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속여 오나라로 유인하는 것이다.

주유의 속셈을 간파한 제갈공명은 유비의 신변 보호를 조자룡에게 맡기며 세 가지 계책을 담은 ‘비단 주머니’를 건넨다. 거기에는 유비가 손권 여동생에게 장가든다는 소문내기, 방심하고 있는 유비 일깨우기, 위기의 순간에 부인 핑계 대기라는 계책이 담겨 있었다. 조자량은 유비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계책을 꺼내 위기를 모면하게 해 준다.

최근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이준석 후보가 ‘비단 주머니 발언’으로 이목을 끌었다. 예비 경선에서 이 후보가 1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나온 금낭묘계 발언은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젊은 정치인의 돌풍이 세대교체 열망을 반영한 결과로 분석되지만 한편으로 이 같은 발언은 ‘공작’의 느낌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입당과 관련해 “3개의 비단 주머니를 드리겠다”고 말한 대목은 노회한 정치인들의 언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윤 전 총장 부인과 장모 공격을 막아 낼 비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 발언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불현듯 산타 할아버지의 커다란 선물 주머니와 우리네 할머니 허리춤에 달린 작은 주머니가 생각난다. 커다란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 주던 산타의 마음이나 허리춤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를 꺼내 손주들에게 주던 할머니의 손길은 ‘사랑’ 그 자체였다.

박근혜에 의해 발탁된 이 후보는 20대부터 10년간 정치를 해 왔다. 화려한 스펙과 학벌은 여느 젊은이들과는 다른 ‘금수저’ 이미지를 풍긴다. ‘금낭묘계’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위한 언사로는 부적절한 듯하다. 민생과 공정을 담은 소박하지만 따스한 주머니 이야기가 그리운 시대다. 희망의 씨앗이 담긴, 그리고 행복의 바이러스가 가득 담긴 주머니 말이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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