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를 구축(驅逐)하는 사회를 배격해야 - 김용하 시인·전 광주검찰시민위원회 위원장
2021년 06월 06일(일) 22:45

김용하 시인·전 광주검찰시민위원회 위원장

16세기 중반 영국의 금융가인 그레샴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했다. 이는 경제적인 용어이지만 사회에서 자질이나 인격이 높은 사람은 나서지 않고 오히려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서 저돌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주도권을 행사하거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조직이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SNS를 활용하여 의견과 주장을 소통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이 단체 카톡방이다. 어떤 것은 수백 명 수천 명이 초대되거나 적어도 수십 명의 회원들이 초대되거나 참여하고 있다. 친밀한 사람들끼리 단순한 친목이나 안부를 묻는 정도의 단순하고 가벼운 카톡방이 있는가 하면 개설 초대자의 의도에 따라 광범위한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는 단톡방도 많다. 처음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름과 면면을 보면 각계의 사회지도층 인사나 지명도가 높은 분들도 거명되고 있는데 나중에 지켜보면 대개 그런 분들은 바로 나가버리거나 탈퇴하지 않더라도 거의 참여하지 않고 묻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초대된 경우도 있어서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톡방이 소수의 적극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지배되거나 지나치게 강한 주장 속에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다수는 참여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면 거의가 정치적으로 자기가 선호하는 정당 및 인물에 대한 홍보성 내용이거나 다른 당 과 후보들에 대한 악선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간혹 자연, 건강, 문화예술에 대한 내용이나 건전한 창작물도 있지만 소수에 그치고 있다. 자신의 주체적 소신이나 학문적 바탕에서 나오는 창작이나 주장이 아니라 이미 홍보물화되었거나 일반화된 ‘퍼 온 내용’들이 재탕 삼탕으로 계속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나 토론을 위해 만들어진 소통의 장이므로 어떤 내용을 올리든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간의 사적 대화의 장이 아니면 실명이건 익명이건 공론의 장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비록 형식은 글이나 그림을 통하지만, 서로가 대면해서 대화하는 것과 유사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에 들어와 있는 불특정 다수에 대해 최소한의 체면과 예의를 갖추는 상식이 요구되며, 이는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자신들의 인격과 양심의 문제라 할 것이다.

자기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미 수없이 보도되거나 일반화된 내용이나 사진을 계속적 반복적으로 여러 곳에 올리는 행위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내년에 대선과 지방선거 등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큰 일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과 지지자들의 활동이 격렬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나라를 이끌어 가야할 좋은 인물을 선출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의 제공과 지지자들의 활동을 반대하거나 제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나 공리적인 언행보다는 오직 자신의 이념이나 확증적 편견에 바탕을 두고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거나, 특정 정당·정치인·지역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과 확인되지 않는 ‘카더라’식의 음해와 정보를 올리는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상처를 주는 범죄 행위이고, 민주 공동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말 없는 다수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적 교육 수준을 자랑하며, 최단 기간에 경제의 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최첨단 제4차 산업을 선도하는 우수한 국민의 집합체이다. 일부 극단적인 맹종주의자들의 현혹과 떼거리 댓글, 막말 주장에 영향을 받는 국민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선택적 지각 오류를 숨기고, 과격한 언행이나 반복적인 게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국민의 냉소 속에 반감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하며 근거가 분명한 정보나 주장을 제시하여 긍정적인 공감을 사도록 노력하며, 타인의 글에 격려하는 선한 댓글을 올리는 사회적 개혁 운동이 전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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