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어불도 박정희 어촌계장 “‘물김’이 선물한 인생 2막…삶이 감칠맛 납니다”
2021년 04월 20일(화) 21:50
25년 전기시공업 접고 고향으로…어민 소득·마을 발전위해 노력
“소형 배 지원사업 선정, 친환경 부표·물김 영양제 사용 확대 목표”

해남 어불도 앞바다에 1만5000평(5㏊) 규모로 펼쳐진 박정희(57)씨 양식장에는 지난 겨울 매서운 파도를 맞고 자란 물김이 자라고 있다. /해남=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올해 마지막 수확하는 김이라고 해서 ‘만살김’이라 부릅니다. 씹다 보면 고소한 맛이 나요.”

해남군 송지면 어불도 앞바다를 배로 3분여 달리면 박정희(57)씨의 5㏊ 규모 물김 양식장이 있다.

지난 13일 만난 박씨는 단박에 취재진을 이끌고 배를 몰았다. 유채꽃이 만발할 무렵이면 마지막 물김을 수확하느라 바쁠 시기인데, 마침 잘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바다에 잠긴 그물을 걷어 올려 김을 한 움큼 떼어내더니 기자에게 맛보라며 건넸다.

혀가 아릴 정도로 짜고 비릿하다가도 몇 번 씹어보니 담백하고 고소한 향이 입안에 풍겼다.

그는 한껏 찌푸렸던 기자의 인상이 차츰 펴지자 “뭐든 부딪혀보면 적응되는 법입니다. 뱃일도 사람 사는 이치랑 다를 게 없죠”라고 말했다.

25년 동안 전기 시공을 해온 이력을 듣지 않으면 박씨는 영락없는 바닷사람으로 보인다.

어불도에서 나고 자란 박씨는 군대를 다녀온 26살 되던 해 고향을 떠났다. 정년까지 일하다 귀어할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10년 정도 일찍 고향에 돌아오게 됐다. 왼쪽 팔에 크게 남은 흉터는 고단했던 도시의 삶을 대신 말해준다.

“부모님이 물김 양식을 하셨기에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어부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귀어 1년 전부터 고향을 오가며 선배들의 조언을 들었죠. 늘 가슴에 바다를 품고 살아왔지만 나이 쉰이 다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고향을 떠난 20년 동안 어불도가 몰라보게 바뀌기도 했고요.”

어불도는 내려다보면 섬이 부처를 닮았다 해서 이름 지어진 섬이다. 주민 4명 중 1명꼴인 50여 명이 20~40대 청년층이다.

김과 전복으로 연평균 240억원을 벌어들이는 부촌으로, 어가당 연평균 매출은 물김 양식은 2억7400만원, 전복은 3억1000만원 수준이다.

어촌뉴딜 추진위원장을 지낸 박씨와 어불어촌계가 한 마음으로 노력한 끝에, 올해 93억원 규모 ‘해양수산부 어촌뉴딜 300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박정희씨 제공>


박씨는 귀어를 준비하는 1년 동안 집을 짓고 배를 구하는 데 빠듯하게 시간을 썼다. 귀어정책자금 대출 조건이 어긋나서 오롯이 스스로 목돈을 마련해야 했다. 귀어 유형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5억원 가량의 초기자금이 필요하다는 게 박씨 설명이다.

“한도 2억짜리 귀어자금을 대출받으려 은행 문턱을 석 달 동안 넘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여곡절 끝에 귀어를 하고난 뒤에도 여러 사정으로 3년 동안 어업 공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귀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다만 ‘왜 귀어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한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앞만 보고 가야 하죠.”

봄이면 뒷마당에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박씨네 ‘빨간 지붕’ 집에는 동갑내기 아내가 함께 살고 있다.

4년 전부터는 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자몽(27)씨가 새로운 식구가 됐다.

“자녀가 장성해서 우리 품을 떠나 적적하던 때 자몽이 와줬어요.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서 맡은 일을 할 정도로 호흡이 붙었죠. 고마운 마음에 생일잔치를 열어줬더니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도 번갈아 잔치를 여는 마을 풍습이 생겨났어요.”

지난해 어촌계장과 어촌뉴딜 추진위원장을 맡으며 뭍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란진항에서 어불도까지 직선거리는 600m 정도로, 두 시간마다 여객선이 오간다.

“제 인생 2막에서 마을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7할이 넘는 것 같아요. 그동안 발로 뛴 덕에 1억원 상당 부잔교와 1억5000만원 크레인을 부두에 유치한 게 제 어촌생활에서 가장 보람찹니다. 올해는 소형 배 지원사업을 선정되고, 친환경 부표와 물김 영양제 사용을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박씨와 어촌계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최근에는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2021년 어촌뉴딜 300 공모사업에 송지 어불항이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어촌 계장 박씨는 전남귀어귀촌지원센터가 선정한 우수귀어인으로 그 역량도 인정받았다.

어촌뉴딜 300사업은 낙후된 선착장 등 어촌의 필수기반시설을 현대화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특화사업을 추진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지역밀착형 생활공공시설(SOC)사업이다.

송지 어불항에는 93억원을 투입해 기항지 편의시설 확충, 공동작업장 조성, 스마트 커뮤니티센터 조성,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등을 추진한다.

/해남=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전남 천해양식어업 10년새 2배 성장…김 생산량 전국 73.5%



해남군 어불도 박정희 어촌계장이 8년째 이어오고 있는 ‘김 양식’은 전남의 대표적 어업 가운데 하나다.

20일 통계청 ‘어업생산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남 김 생산량은 39만4111t으로, 전국 생산량(53만6127t)의 73.5%를 차지했다.

전남 김 생산량은 10년 전인 지난 2010년(15만4652t)보다 154.8%(23만9459t)나 증가했다.

김과 미역이 주요 품종인 천해양식어업은 전남에서 10년 새 2배 넘게 성장했다.

지난해 전남 천해양식어업 생산량은 170만547t으로, 지난 2010년(83만4952t)에 비해 103.7%(86만5595t) 증가했다.

전남 어업 생산량에서 천해양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90.6%로 가장 많다. 천해양식에 이어서는 일반해면어업(16만8269t·9.0%), 내수면어업(8168t·0.4%) 순으로 나타났다.

10년 새 어업별 생산량이 줄어든 부문은 일반해면어업(-0.7%)이 유일하다. 일반해면어업 생산량은 지난해 16만8269t으로, 10년 전보다 1236t(-0.7%) 감소했다.

천해양식 생산량은 103.7% 증가하고, 강이나 호수에서 이뤄지는 내수면어업 생산량은 14.5%(1035t) 늘어난 8168t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 동안 전남 어업별 생산량 비중은 큰 폭으로 변화했다.

천해양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0년 82.5%에서 지난해 90.6%로, 8.1%포인트 증가했다. 일반해면어업 생산량 비중은 16.8%에서 9.0%로, 7.8%포인트 감소했다. 내수면어업 비중도 0.7%에서 0.4%로, 0.3%포인트 줄었다.

지난 한 해 전남 어업 생산량은 10년 전보다 85.5%(86만5393t) 늘어난 187만6983t을 기록했다. 전남 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317만4407t)의 절반 정도(57.3%)로, 17개 시·도 가운데 1위다. 전남의 뒤를 잇는 경남 생산량(59만6842t)보다 3.1배 많은 수준이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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