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고백과 사죄 그리고 아름다운 용서
2021년 03월 19일(금) 05:00 가가
“40여 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이제라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박병현 씨를 총격해 숨지게 한 계엄군 A(73)씨가 박 씨의 형인 박종수(73) 씨 등 유가족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이에 박 씨는 “늦은 사과라도 고맙다”며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 달라”고 A씨를 용서하고 껴안아 주었다.
계엄군이 자신의 총격으로 절명한 피해자의 유족을 만나 사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의 증언은 5월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또 다른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A씨는 1980년 5월 23일 주남마을 총격 당시 상황에 대해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젊은 남자 두 명이 공수부대원을 보고 도망쳤는데 정지를 요구했으나 달아나길래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숨진 박 씨의 사망 현장 주변에선 총기 등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는데 계엄군이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그날 5월의 진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계엄군 A씨의 이번 사죄를 계기로 당시 활동했던 공수부대의 행적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계엄군의 주력으로 꼽히는 7공수부대와 11공수부대의 유혈 진압과 학살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적은 광주항쟁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규명되지 못한 암매장과 행방불명자 등을 규명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아울러 5월의 의혹을 완전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A씨와 같은 참회의 고백과 양심선언이 잇따라야 한다. 그들 또한 상부의 명령에 따른 피해자들인 만큼, 적극 증언에 나섬으로써 과거를 훌훌 털어 버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