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리더 :영조 그리고 정조 노혜경 지음
2020년 12월 13일(일) 10:00 가가
영조는 왕이 될 수 없는 왕자 신분 시절이 있었다. 20대 시절을 궐이 아닌 창의동 사저에서 보냈다. 이 기간은 영조에게 서민들의 실상과 삶의 애로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훗날 왕에 즉위해 펼쳤던 ‘민생 특화’ 정책들을 당시 머릿속에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도 백성의 복리 증진에 필요한 정책들을 추진했다. 화성 건설 당시 뙤약볕에서 고생하는 일꾼을 위해 ‘척서단’이라는 환약을 개발해 보급했다. 아들 순조의 세자 책봉식에서는 계층과 지역을 초월해 두루 혜택이 가는 포상과 사면을 궁리하기도 했다.
영조와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군주로 평가받는다. 호서대 혁신융합학부 노혜경 교수의 ‘두 리더: 영조 그리고 정조’는 두 군주의 결정적 순간들을 조명한다. 저자는 두 군주가 꿈꾸었던 르네상스 조선을 50가지의 장면을 통해 들여다본다.
두 인물의 공통점으로 시대 변화 요구를 인지하고 이에 부응하는 개혁 정책을 펼치려는 의지를 꼽는다. 물론 시대의 요구에 대한 판단에서는 긍정적인 면과 아쉬운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언급한대로 영조는 출신 배경에 한계를 지녔다. 무수리 출신 아들이라는 사실은 정통성 논란을 자아내는 요인이었지만 극복 의지 또한 갖고 있었다. 이후 그의 ‘불편함’은 신분 구조 변동 양상을 보이는 당대 사회를 직시하고 이에 대응하는 개혁성의 기제가 됐다.
또한 정조는 할아버지이자 선왕인 영조의 개혁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무엇보다 ‘공평’을 추구하며 민간의 세금이나 부역을 감면해주기도 했으며 왕실 행사에 백성을 무상 동원하던 관행을 깨기도 했다. <뜨인돌·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영조와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군주로 평가받는다. 호서대 혁신융합학부 노혜경 교수의 ‘두 리더: 영조 그리고 정조’는 두 군주의 결정적 순간들을 조명한다. 저자는 두 군주가 꿈꾸었던 르네상스 조선을 50가지의 장면을 통해 들여다본다.
언급한대로 영조는 출신 배경에 한계를 지녔다. 무수리 출신 아들이라는 사실은 정통성 논란을 자아내는 요인이었지만 극복 의지 또한 갖고 있었다. 이후 그의 ‘불편함’은 신분 구조 변동 양상을 보이는 당대 사회를 직시하고 이에 대응하는 개혁성의 기제가 됐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