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절 ‘별’을 노래한 영혼의 시인 윤동주를 되새기다
2020년 08월 25일(화) 00:00
<6> 서울 윤동주 문학관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했던 시인 윤동주의 삶과 문학세계가 응결돼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윤동주만큼 부끄러움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인은 없다. 그의 시에는 유독 ‘부끄러움’을 매개로 한 시어가 많이 등장한다. 작품 ‘참회록’은 자기 성찰을 토대로 한 순결성 추구에 닿아 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용정에서 태어났다. 북간도로 알려진 고향은 우리 근대사의 아픔과 고통이 점철된 공간이다.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하자 애국지사들이 북간도로 이주해 활동했다. 일본군은 무시로 보복을 자행했으며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일제의 만행을 목격했다.

중국 용정에 있는 시인의 생가.
윤동주의 어릴 적 이름은 해환(海煥)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해처럼 빛나게 살라”는 뜻으로 그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던 윤동주는 유년시절부터 ‘어린이’ 등과 같은 잡지를 구독하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서울의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진학하고 이후 도쿄와 교토에서 유학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 기간이 길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돼 1945년 2월 16일 후꾸오까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윤동주의 연희전문 후배였던 정병욱(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은 추모기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 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사진으로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 옛 가옥에서 발견된 윤동주 원고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시에 드러나는 인간 윤동주의 모습은 유약하지만 매우 인간적이다. 그의 ‘부끄러움은’ 내면 성찰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한 죽비와도 같다.

윤동주문학관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다. 작고 아담한 문학관을 사이로 뒤로는 인왕산 자락이, 앞으로는 경복궁이 있다. 흰색 톤의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의 순절한 영혼을 떠올리게 한다. 소담하면서도 단촐한 조형미는 그의 작품세계와 성정을 닮았다.

시인은 대학시절 소설가 김송(1909∼1988) 집에서 하숙을 했다. 당시 문우이자 후일 평론가로 문명을 날렸던 정병욱(1922∼1982·전 서울대국문과 교수)이 절친한 후배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아침이면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했다. 두 사람은 언덕을 오르며 식민지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아파했다. 그들은 부조리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문학의 길을 가기로 결의한다. ‘별헤는 밤’, ‘자화상’, ‘쉽게 쓰여진 시’ 등 독자들에게 알려진 빛나는 작품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 시비.
윤동주문학관은 지난 2012년 개관했다. 원래 이곳은 청운수도가압장이 있던 자리다. 가압장은 느린 물살에 압력을 가해 세차게 흐르도록 견인하는 장치다. 윤동주의 시심과 가압장은 상통되는 의미를 지닌다. 문학관 관계자는 “세상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뒤로 물러서는 우리들에게 그의 시는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일종의 자극을 준다”고 설명한다.

문학관은 그렇게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영혼의 생명수’를 공급해준다. 주말이면 어림잡아 2000여 명의 관람객들이 시인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했던 8월 초, 기자가 찾은 이날도 전국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순전한 영혼의 시인을 만나기 위한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1전시실은 윤동주의 시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 위주로 구성돼 있다. 사진자료, 친필원고 영인본은 그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눈에 띄는 자료 가운데 하나가 중앙에 놓여 있는 ‘우물틀’이다. 용정 생가에 방치돼 있던 것을 문인들이 가져온 것으로, ‘자화상’ 모티브로 추정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아가선”으로 시작되는 ‘자화상’은 윤동주의 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2전시실은 가압장 물탱크가 있던 공간을 활용했다. ‘열린 우물’을 상징하는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장소성을 환기한다. ‘열린 우물’은 가압장의 물탱크 윗부분을 개방한 덕분에 천장이 없다. 물탱크에 저장됐던 물의 흔적은 벽면에 특유의 물그림자를 새겨 방문객들에게 시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작품의 의미를 다각도로 엿볼 수 있게 했다.

3전시실은 ‘닫힌 우물’과 연계된다. 물탱크 윗부분을 개방하지 않은 탓에 하나의 공간으로 이미지화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캄캄한 감옥의 이미지와 만난다. 윤동주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를 현실 속에서 재현했다. 방문객들을 위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소재로 한 다큐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상영된다.

또한 이곳에선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문학제가 열린다. 추모콘서트, 시화전 등은 윤동주의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중요한 행사다. 문학관과 청운문학도서관, 시인의 언덕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와 활동은 우리 시대 왜 우리가 윤동주를 기억하고 환기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시인의 언덕에 피어 있는 꽃
문학관을 나와 뒤편에 펼쳐진 ‘시인의 언덕’을 오른다. 장마철 눅눅한 날씨와 특유의 습기가 밀려온다. 그러나 시인의 언덕에 오르자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한폭의 그림 같은 수려한 풍광이 답답한 가슴을 씻어준다. 좌로는 북악산이, 앞으로는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인왕산과 창의문(자하문)이 수도 ‘한양’의 위엄을 드러낸다. 여기에 서울 성곽의 흔적까지 남아 있어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다.

‘풍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떠오른다. 윤동주는 이 언덕에서 별을 헤며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을 터다.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아파했던 고뇌에 찬 시인의 표정이 풍경과 오버랩된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소담한 시인의 시비가 서있다. 습한 바람만 휑하니 부는 이곳에서 잠시 그의 삶을 떠올려본다. 그의 이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자 누가 있을까.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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