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史記)’ 만화로 펴내는 이희재 작가
2020년 08월 25일(화) 00:00
“역사 속 인간군상 만화로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싶어요”

7년째 역사서 ‘사기’(史記) 만화작업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이희재 작가.

완도 섬소년은 어렵사리 구한 만화책을 보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1981년 만화가로 데뷔한 그는 80년대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만화를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만화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썼다. 최근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작업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이희재(68) 작가를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작업실에서 만나 만화인생과 작품세계에 대해 들었다.



3권까지 출간된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사기(史記)’ 인간군상 생동감 있게 포착= “마흔이나 됐을, 늦은 나이에 ‘사기’를 풀어서 쓴 이야기 삽화를 그리기 위해서 처음 읽게 된 거죠. ‘사기’를 접하면서 느낀 게 ‘옛 사람들의 역사인데 이렇게 재미있구나!’ 경이로움, 놀라움이에요.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그걸 전달하고 싶어요.”

이희재 만화가는 지난 2014년부터 7년 동안 꼬박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史記)’ 인물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 해오고 있다. 60대의 시간을 고스란히 ‘사기’에 쏟아 붓고 있는 셈이다. 올 상반기에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휴머니스트 刊) 1~3권을 내놓았고, 9월에 4권을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중에 7권으로 최종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그리기 전 저자인 사마천과 공자, 형가, 범저, 오자서 등 열전(列傳) 속 인물들의 온갖 자료를 섭렵하며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체화(體化)를 해야 인물을 내 언어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시대적 구조와 나라간 이해관계도 파악해야 한다. 특히 당대의 의식주와 무기류에 대한 꼼꼼한 고증 역시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일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 작업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사기’를 만화로 다루면서 작가는 ‘이희재의 만화다움’을 추구한다. 열전은 인간의 이야기, 일종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만의’ 연출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는 만화를 창작하며 ‘드라마의 기세’(氣勢·힘 있고 기운차게 뻗는 형세)를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화가를 비롯해 모든 예술가들이 자기의 기운생동(氣韻生動)함, ‘기세’를 찾아내는 것은 ‘자기 화법(話法)’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미학에서 얘기하는 기운생동… 용을 그릴 때 제일 나중에 눈을 그리면 하늘로 솟구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만화든 영화든 모든 예술에는 기세가 있어요. 사진을 찍어서 붙여놓은 것처럼 그림만 그리면 죽은 그림이에요. 그들(역사인물)이 살아서 생동하는 것처럼 지금, 읽는 이의 눈으로, 몸속으로 들어와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존하는 오늘의 이야기로 살아나도록 해줘야 되는 것이 기세입니다.”



1985년 월간 ‘보물섬’에 작품을 연재하던 30대 시절.
◇완도 섬소년 ‘일리아드’ 보며 만화가 꿈꿔=이희재 작가는 1952년 완도군 신지면 가인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바다 건너편 완도읍내에 나갔다가 난생 처음 만화방을 봤다. 그곳에는 ‘꿈에서도 보지 못한 보물들’이 널려있었다. 아버지를 졸라 만화책 한권을 샀다. 통통배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 지난 후에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다룬 내용임을 알았다.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보면서 그리스군이 트로이 해변에 배를 대고 상륙하는 만화속 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집안일을 돕던 그는 2년 늦게 중학 입학시험을 치르고 광주 무등중에 입학했다. 학교와 큰아버지 집을 ‘다람쥐처럼’ 오가는 모범생이었다. 작가가 2학년일 때 ‘운명 같은’ 일이 생겼다. 휴가를 나온 해병대 출신 사촌형이 밤낮 책상 앞에 앉아있던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 것이다.

“사촌형 팔에 잡혀서 골목에 나갔죠. ‘사내새끼가 바깥에 쏘다니고 그래야지’, 그 말에 동의해요. 1년 내내 우측으로만 다녔는데 좌측으로 30m 가니까 거기에 보물섬이, 신세계가 있어요.(웃음)”

그가 만화계에 정식으로 데뷔한 때는 1981년, 29살이었다. 외줄 타는 서커스 광대를 다룬 ‘명인’과 도시빈민 남매를 주인공으로 한 ‘억새’ 작품을 단행본으로 발표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깊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데뷔전까지 그는 20대 10여 년을 만화배경을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카드회사에서 일하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때 백수와 회사생활 등을 하며 산전수전 겪은 경험이 훗날 만화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지난 2013년 ‘한국만화 거장전’에서 선보인 ‘나 어릴 적에’ 한 장면.
그는 1983년 월간 어린이 만화잡지 ‘보물섬’에 ‘골목대장 악동이’를 연재했다. 미국 여류작가 빅토리아 빅터(1831~1885)의 동화 ‘악동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완력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왕남이’를 빗대 80년대 현실정치를 풍자했다. 80년대 중반에는 새로 창간된 만화 잡지에 도시로 돈 벌러 떠난 경숙을 통해 산업화 시대의 비애를 다룬 ‘간판스타’와 쓰레기 수거수레를 끄는 청소부 부부의 비극을 포착한 ‘새벽길’ 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는 ‘사람사는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있었다. 그의 이름 앞에 ‘사실주의 만화가’, ‘리얼리즘 만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나는 리얼리즘이 뭔지도 몰랐고(웃음), 내가 살아왔으니까 내 몸에 든 데로 나온 거예요. 내가 이론적으로 배운 걸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건 아니고, 내 몸에서 저절로 나온 건데 그것을 평론적 용어로 리얼리즘이라고 한 거죠.”

그는 다섯 살 꼬마 ‘제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브라질 작가 J. M.바스콘셀로스 원작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1988년)와 이윤복 일기를 소재로 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1990년), 아홉 살 여민이의 눈을 통해 1960년대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풀어내는 ‘아홉 살 인생’(2004년), ‘악동이’가 ‘아이코’를 만나 신비로운 모험을 하는 ‘아이코 악동이’(2008년)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2000년대에는 ‘이희재 삼국지’(10권·2016년)와 ‘감동한국사’(5권·2008년) 등 대작 역사만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차기 작품으로 광주 학생독립운동사 준비=만화가가 되려면 ‘간단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우선 머릿속에서 생각하면 바로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이라는 테크놀로지를 몸에 장착해야’ 하고, 이야기를 풀고, 짓는 ‘콘텐츠’ 창작공부를 스스로 해야 한다. 학업을 중단한 그 역시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끊임없는 독서와 발로 뛰는 취재, 일기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종래 선생 문하에 들어갔을 때 선생이 문득 던진 말이 ‘공부해라’였다. 30여 년 전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광주 학생독립운동사’(1974년 발행)는 얼마나 읽었는지 많은 포스트 잇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그의 작품속 ‘사람사는 이야기’는 독서로 다져진 내공과 소시민의 일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요즘 액정 태블릿 ‘신티크’(Cintiq)로 ‘사기’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람이 나이 들면 얼굴이 달라지듯, 시대 변화에 맞춰 디지털 도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한지에 붓과 먹으로 ‘오리지널’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다. 촛불시위 집회 현장이나 집근처 소나무숲 등지에서 ‘손맛’이 들어가는 붓펜으로 틈틈이 화첩에 스케치하길 즐겨한다. 흔들리는 선이 몸에서 절로 흘러나온다. 딸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가는 내년에 데뷔 40주년을 맞는다. 어떤 미래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 궁금해 물었다.

“우선 ‘사기’를 끝내는 것이 급선무고요. 일생을 밥 먹고 사는 일들에 매여서 보낸 느낌이 없지 않아서 조금은 허전해요. ‘사기’를 마치고 ‘광주 학생독립운동사’를 시작하려 합니다. 나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역시 많이 배운 것은 ‘광주’입니다. 5·18도 기회가 되면 해야죠.”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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