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시대 ‘자유’를 노래했던 모더니스트
2020년 07월 20일(월) 00:00
<4> 서울 도봉구 김수영 문학관

지난 2013년 개관한 김수영문학관은 서울시 도봉구 방학3동 문화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해 마련했으며, 이곳에는 김수영의 삶과 문학적 혼이 응결돼 있다.

‘김수영’(金洙暎·1921~1968)은 우리 문학사에서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아우르는 작품은 과연 시란 무엇인가, 오늘의 삶에서 시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 물음이 단선적인 답을 요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현대문학사에 위대한 시인들은 적지 않다. 전통시의 율격의 아름다움을 지향했던 김소월, 회화적인 언어 감각이 남달랐던 정지용, 비록 친일주의 문학이라는 오명이 없지 않지만, 작품 자체가 주는 맛과 의미가 남다른 서정주, 토속적 언어에 우리의 정서를 심미적으로 노래했던 백석 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시인이 바로 김수영이다. 물론 앞서 열거한 시인들과 문학적 결이 다르다. 모든 예술가가 시대를 초월해 생명력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넘어, 경계를 넘어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작품을 써내는 문인은, 역설적으로 시대를 초월해 존재한다. 우리의 시대에 여전히 김수영이 존재하고 끊임없이 후세대의 시인들에 의해 소환되는 것은 그의 시가 주는 울림과 감동 때문이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그는 연극을 통해 문학적 열정과 재능을 축적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은 그의 삶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영어강사였던 그는 의용군에 강제 징집된다. 가까스로 야간 탈출에 성공하지만 얼마 후 체포를 당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나고 자유로운 기질이 강했던 그는, 그곳에서 억압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52년 석방되지만 수용소에서 맞닥뜨렸던 자유 없는 창살의 체험은 그에게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도래한 1960년대. 이승만 독재와 3·15부정선거 그리고 4·19는 김수영의 삶에 커다란 폭풍으로 다가온다.



문학관 인근 공원에 자리한 ‘푸른 하늘을’ 시비.
도심의 검은 아스팔트를 비집고 푸른 풀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 숨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돋아나는 풀은 김수영의 시처럼 가장 먼저 일어서고, 먼저 외치고, 먼저 부대끼다, 먼저 눕는 우리 시대의 ‘성자’를 닮았다. 아울러 풀은 모든 삶의 고달픔을 묵묵히 견디면서도 내일에의 꿈과 소망을 잃지 않는 우리들의 다정한 이웃의 모습에 비견된다.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김수영은 그렇게 ‘풀’을 매개로 엄혹의 시대를 주시했다. 그의 시대는 불온했고 불후했으며 부조리했다. 1960년 4·19을 기점으로 한 시대의 자장에서 김수영의 시는 존재하고 확장된다. 민중의 생명력과 넉넉함은 비록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눕고 울지만, 그들의 노래와 함성은 비와 동풍을 잠재우는 아름다운 변혁으로 작용한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조금은 떨어진 지역이라 한가로운 여유가 느껴진다. 주변의 정취는 시적인 감수성과 맞물려 잔잔한 여운을 준다. 한갓지다는 것은 여백의 다른 이름일지 모르겠다. 눈에 띄는 것은 건물 외벽에 나무로 형상화한 ‘金洙暎문학관’이라는 글자다. 모던하면서도 이지적이며 강인한 인상을 주는 것이 김수영 시를 닮았다.



전시실에는 시인의 친필원고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가 비치돼 있다.
김수영문학관은 지난 2013년 11월에 개관했다. 서울시 도봉구가 방학3동 문화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지하 1층에 지상 4층 규모로, 1층은 시인의 작품을 주로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시와 평론 중심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시인의 연보를 비롯해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조망할 수 있다.

2층에는 시인의 원고 등 주로 유품 관련자료들이 다수 전시돼 있다. 시인의 문학적 향기를 가늠할 수 있는 초고와 육필 원고 등이 비치돼 있어 가까이서 시인을 대면하는 착각마저 든다.

3층과 4층은 각각 도서관과 강당이 자리하고 있어 독서를 하거나 다양한 행사 등을 치를 수 있다. 문학관이 개관하면서 인근은 문화의 거리로 변신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원당샘공원과 북한산둘레길 등이 문화라는 콘셉트로 연계돼 있어 문화적 향기를 발한다.

김수영은 가장 ‘시적인 삶’을 살았던 시인이다. 시와 함께 살고 투쟁했으며, 시와 함께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갔다. 그러다 결국 시처럼 생을 마감했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가 있을까.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모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육화해 탁월한 작품을 써냈다. 문학관 주변의 풍경에 오래도록 눈길을 준다. 분주함과 복잡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소담한 모습들이 자연스레 흘러든다. 어디쯤에서 고뇌어린 표정의 시인이 나타날 것도 같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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