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예감하는 서스펜스 ‘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2020년 07월 16일(목) 00:00 가가
뮤지컬 ‘레베카’(혹은 ‘리베카’)의 원작은 본래 소설이다. ‘서스펜스의 여제’라 불리는 영국 소설가 대프니 듀 모리에(1907~1989)의 대표작이다. 1938년 출간되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독자의 사랑을 받았으며, 출간되던 해에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영향력과 유명도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서스펜스와 스릴러, 미스터리가 ‘장르소설’이라는 구시대적 구분에 속박되어 있던 탓도 있을 것이고, 당대의 대중성을 획득한 여성 작가라는 위치와 평가도 불리하게 작용했던 듯하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지금과 같은 처지는 2차세계대전 전후,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많은 작가들이 우리나라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패키지되어 고전으로 명명되고 있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최근에 출간된 ‘인형’은 작가의 초기작을 모은 작품집이라는 데서 앞서의 평가와 편견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작가의 다른 저서보다 문학성과 화제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인형’에는 집필 당시에는 발표되지 못했던, 작가의 초기작이 담겼다. 10대 후반 시절부터 2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작품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집필한 지 100년이 지닌 지금까지도, 집필 시기의 작가보다는 인생 선배일 가능성이 높은 지금의 성인 독자에게까지, 이 작품이 서스펜스 문학의 전범이자 미학적인 단편소설의 전형으로서 충분히 훌륭하게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열아홉 살에 썼다는 ‘동풍’은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갑작스레 찾아온 이방인이 몰고 온 균열을 인간 본연의 욕망과 결부시켜 그려 내는 소설이다. 남편 ‘거스리’와 영혼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 가던 ‘제인’에게, 범선을 타고 나타난 낯선 사내들은 마치 동풍처럼 어쩔 수 없는 끌림으로 다가든다. 부정을 저지른 그녀는 남편에게 가질 마땅한 죄의식을 느끼지만, 남편 거스리는 취해 있다. 그는 대화를 이어갈 용의가 없다. 처단은 빠르고, 잔인했다. 동풍이 몰고 온 절망의 기운이 가득한 새벽, 범선은 썰물의 힘을 빌려 이미 섬을 떠나가고 없다. 작품의 줄거리를 감싸며 맥락을 만들어 내는 배경의 뉘앙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인물의 동선과 행동만으로 표현되는 복잡한 심리, 끔찍한 결말을 담담하게 내어 놓는 과단성. 흥미진진한 천재 작가의 초기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표제작 ‘인형’은 특히나 충격적이다. 주인공 ‘나’는 베일에 싸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고아로 알려진, 그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여성 리베카에게 완전히 빠진다. 이 치명적 사랑을 표현하는 문장을 보자. “나는 당신을 너무도 사랑했고 당신을 너무도 원했고, 당신에겐 너무 과분할 만큼의 애정을 품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내 심장에 박혀 뒤틀린 뿌리처럼 자랐고, 두뇌를 파고드는 치명적인 독약이 되었다. 당신은 나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렸다.” 리베카가 어떻게 했기에 이 남자의 고통은 이토록 절절한가. 프랑스 산업혁명의 원조격인 자크 드 보캉송의 ‘기계오리’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이 작품은 이른바 ‘리얼돌’로 불리는 섹스토이가 논란인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형’을 표현하는 문장은 고딕 소설의 정점을 보여 주고, ‘인형’을 마주한 ‘나’의 독백은 수명이 긴 고전 소설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지만, 소설은 현실의 끔찍함과 기괴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다. 소설이 현실보다 앞서는 것은 현실에 대한 예감뿐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이 현재성을 갖는 것은 거의 100년 전에 작가가 예감한 인간의 삶이 지금까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은 그야말로 ‘서스펜스’이고 ‘미스터리’이다. 수도 서울의 수장이 알고 보니 성추행의 가해자였고, 그간의 행각이 세상에 알려질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는 신상이 털리고 온라인에는 온갖 저열한 2차 가해가 난무한다. 가해자의 장례는 각계각층의 선택적 애도와 함께 5일 동안 치러진다. 그에 비할 수 없이 더 많은 날이 완전한 피해 복구에 소모될 것이다.
이 일련의 사태! 그 어떤 소설보다 서스펜스하고 미스터리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2020년 한국에 다시 나타난다면, 소설을 쓸 수가 있으려나? 아마 그럴 것이다. 그의 소설은 현실의 재현이 아닌, 현실의 예감이었으므로. 그리고 지금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들은 어떤 예감을 내어 놓고 있는지 살펴보아도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의 현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표제작 ‘인형’은 특히나 충격적이다. 주인공 ‘나’는 베일에 싸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고아로 알려진, 그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여성 리베카에게 완전히 빠진다. 이 치명적 사랑을 표현하는 문장을 보자. “나는 당신을 너무도 사랑했고 당신을 너무도 원했고, 당신에겐 너무 과분할 만큼의 애정을 품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내 심장에 박혀 뒤틀린 뿌리처럼 자랐고, 두뇌를 파고드는 치명적인 독약이 되었다. 당신은 나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렸다.” 리베카가 어떻게 했기에 이 남자의 고통은 이토록 절절한가. 프랑스 산업혁명의 원조격인 자크 드 보캉송의 ‘기계오리’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이 작품은 이른바 ‘리얼돌’로 불리는 섹스토이가 논란인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형’을 표현하는 문장은 고딕 소설의 정점을 보여 주고, ‘인형’을 마주한 ‘나’의 독백은 수명이 긴 고전 소설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지만, 소설은 현실의 끔찍함과 기괴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다. 소설이 현실보다 앞서는 것은 현실에 대한 예감뿐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이 현재성을 갖는 것은 거의 100년 전에 작가가 예감한 인간의 삶이 지금까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은 그야말로 ‘서스펜스’이고 ‘미스터리’이다. 수도 서울의 수장이 알고 보니 성추행의 가해자였고, 그간의 행각이 세상에 알려질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는 신상이 털리고 온라인에는 온갖 저열한 2차 가해가 난무한다. 가해자의 장례는 각계각층의 선택적 애도와 함께 5일 동안 치러진다. 그에 비할 수 없이 더 많은 날이 완전한 피해 복구에 소모될 것이다.
이 일련의 사태! 그 어떤 소설보다 서스펜스하고 미스터리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2020년 한국에 다시 나타난다면, 소설을 쓸 수가 있으려나? 아마 그럴 것이다. 그의 소설은 현실의 재현이 아닌, 현실의 예감이었으므로. 그리고 지금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들은 어떤 예감을 내어 놓고 있는지 살펴보아도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의 현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