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헌신
2020년 07월 13일(월) 00:00 가가
“선생님은 늘 내 곁에 계셨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선생님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아름다운 것들을 대할 때 느꼈던 기쁨 가운데 얼마만큼이 나 스스로 느낀 것이고, 얼마만큼이 선생님의 영향인지 가늠할 수 없다. 선생님은 나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고, 내 삶의 발자국은 선생님 삶의 발자국과 일치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지닌 좋은 점은 모두 선생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재능이나 영감이나 기쁨은 모두 선생님의 사랑의 손길에 의해 깨어났으므로.”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걸린 큰 병으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지만 그 대가로 청각과 시각을 잃어버린 헬렌 켈러(1880~1968)가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에서 ‘영혼의 친구이자 스승’인 앤 설리번에 대해 쓴 구절이다.
크나 큰 장애를 극복해 낸 헬렌 켈러가 설리번 선생님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하는 장면을 인터넷 등을 통해 보고 있자면 ‘사람의 인생에서 스승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되새겨 보게 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인으로서 우두커니 어둠 속에 앉아 평생을 보내야만 했을 헬렌 켈러가 설리번을 만나 일반인보다 더욱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는 세간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배움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스승 또는 지도자란 늘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다. 특히 1대1로 기술을 전수받아야 하는 예체능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이들은 스승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스승은 누구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문화·예술·체육계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학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존경과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사제 관계가 ‘갑과 을’의 관계로 전락해 버린 것만 같아 씁쓸하다.
남보다 뛰어난 기술을 익히고 각 분야의 주류 세계로 편입하는 것이 곧바로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는 현실 세계의 운영 원리가 사제 관계에서마저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일까? ‘사랑과 헌신’의 정신마저 영영 사라져 버린 건 아닌지, 아쉽기만 하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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