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 생각’] 숲을 지켜 온 어리석지만 가장 영리한 방법
2020년 07월 09일(목) 00:00
여름 햇살은 뜨거워지고 숲 그늘은 더 짙어졌다. 이즈음이면 늘 숲에 들어서고 싶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햇살을 피해 초록의 숲 그늘을 걷는 것도, 쏟아지는 빗줄기에 몸을 맡긴 채 빗소리 들으며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숲을 찾는 건 원초적 생명으로의 회귀본능일지 모른다.

제주에 가면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이라는 이름의 숲이 있다. 원시적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천연의 원시림이다. 비자나무가 주종이어서 ‘비자나무 숲’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나무들도 많다. 자귀나무·아왜나무·머귀나무·후박나무 같은 난대성 식물은 물론이고, 나도풍란·콩짜개난·흑난초·비자란 같은 희귀 식물까지 골고루 섞여서 안정적 식생을 이룬 건강한 숲이다. 자연히 식물에 깃들어 사는 새들과 곤충도 다양할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숱하게 많은 미생물이 어울려 살 것이다. 온갖 종류의 생물이 평안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천연의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숲이다.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한 이 숲의 전체 면적은 무려 44만8758평방미터. 비자나무 보호림으로는 세계적 규모다. 2570그루의 비자나무가 곳곳에서 헌칠하게 자랐다. 이 숲에서 가장 오래된 비자나무는 800년쯤 됐고, 대부분은 300년에서 600년쯤 되는 나무들이다. 숲의 상당 부분은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되고, 1Km 남짓의 짧은 구간만 관람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철저하게 출입을 제한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숲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일부 관람로를 조성해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한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부터 이 숲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제주 사람들은 이 숲의 비자나무를 지키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숲 안에 들어가는 걸 엄격히 금지했다. 심지어 “이 숲 안에 들어가기만 해도 천벌을 받는다”는 전설까지 지어 냈고, 제주 사람들은 이 황당무계한 전설을 어리석을 정도로 철저히 믿어 왔다. 숲을 온전히 지켜낸 건 전설이었던 셈이다.

처음부터 제주 사람들이 ‘다양한 생명의 공존’ 혹은 ‘지속 가능한 생명 공동체’라는 거시적인 목적으로 숲을 보존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순전히 정치 경제적 이유가 있었으니 즉 국가 자원이라는 점에서 비자나무를 지켜 왔다. “탐라국의 왕자 수운나가 비자를 조정에 바쳤다”며 제주 비자나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고려사’를 비롯해, “주요 국가 자원인 이 숲의 비자나무에 대해 벌목을 금지한다”고 기록한 조선 예종 때의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이를 증거한다.

긴 세월이 지나면서 비자나무 숲은 경제적 자원으로서의 의미를 잃고, 이젠 천연 자연의 보전 구역이라는 더 큰 의미를 가진 숲이 되었다. 그동안 산업화의 와중에서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내고, 나무에 깃들어 살던 숱한 생명들을 내쫓았다. 그리하여 우리 곁에 숲이라 부를 만한 자연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숲이 원시림 상태로 남았다는 건 기적처럼 고마운 일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비대면 산업을 비롯한 디지털 산업이 가장 주목받는 분야라고들 이야기한다. 거리 두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생활에서 디지털 산업이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 갈 것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미세먼지를 이야기하고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했고, 숲의 중요성을 앞다퉈 이야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북극의 빙하는 더 녹아내렸고, 여름 기온은 ‘역대급’으로 치솟았으며, 살 곳을 잃은 미생물은 병원균이 되어 사람의 몸에 스며들었다.

지금이라도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에게 공간을 내어 주고, 더 넓은 땅에 숲을 보존하는 건 결코 다른 생물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다른 생명의 보금자리를 지켜 주는 이타적인 행위는 더불어 사람이 더 평안하게 살기 위한 이기적인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황당무계한 전설을 믿으며 지켜 온 천연의 숲을 지금 다시 찾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무 칼럼니스트>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