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배지 유감
2020년 06월 19일(금) 00:00
올해 6·10민주항쟁 기념식은 ‘꽃이 피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기념식이 열린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고(故)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했던 그곳 509호 고문실 창문에는 커다란 장미꽃이 걸려 있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승리의 역사를 장미꽃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엔 6월항쟁 당시 시민들이 경찰에게 장미꽃을 달아 주며 폭력에 저항했던 역사가 담겨 있다. 이렇게 해서 6월항쟁의 상징은 장미꽃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장미의 계절’ 5월에 일어난 5·18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한 상징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만 해도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의미하는 노란 리본이 있다. 제주도민의 영혼이 붉은 동백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 갔다는 의미를 담은 4·3의 동백꽃도 있다. 이처럼 역사적 경험이나 시대적 아픔은 배지나 기호 등의 상징물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물론 5·18 기념 배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숫자로 518을 새기기도 하고, 추모탑 사진을 넣거나, 판화 작품 속 이미지를 가져오기도 하는 등 그동안 여러 종류의 배지가 나왔다. 올해는 40주년 기념 배지에 주먹밥 이미지를 넣어 ‘나눔과 연대’의 광주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5·18의 의미를 온전하게 담아내지는 못한 듯하다.

필자는 5·18 관련 기사를 편집할 때 주로 두 개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이 진압봉으로 시민을 폭행하는 저 유명한 사진과 옛 도청 앞 분수대를 중심으로 광장에 수 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있는 사진이다. 이 모두 1980년 당시 광주일보(옛 전남매일, 옛 전남일보) 기자들이 현장에서 찍은 것이다.

특히 5월항쟁에서 도청 앞 분수대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집단 발포의 현장이었고 민족민주대성회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곳이었으며 시민들이 항쟁 의지를 다지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분수대 한가운데 태극기가 놓이고 수만 명의 광주시민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분수처럼 쏟아내던 모습을 형상화해 배지나 기념품 등 5·18의 상징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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