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악마의 재능
2020년 06월 16일(화) 00:00

이 정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장

필자는 안타깝게도(?) 스포츠를 무척 좋아한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안타깝다고? 너무 좋아하지만 너무 못하기 때문이다. 테니스는 구력이 20년이 넘고 주말마다 출격하지만, 예외 없이 상대 선수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활용된다. 골프장에서도 소위 ‘호갱’이다. ‘현금 자동 지급기’ 또는 ‘도시락’과 동의어다. 당구는 40년째 ‘만년 하수’의 또 다른 표현인 ‘만년 150’에 머물고 있다. 탁구를 칠 때마다 탁구대가 왜 그렇게 좁아야만 하는지 원망스럽다.

지인들은 필자에게 레슨도 안 받고 노력도 안 하면서 잘하기를 바라느냐고 핀잔을 준다. 웃기지 마시라. ‘너튜브’도 자주 보고 거실 천장을 골프채로 망가뜨리기도 한다. 나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자의 가장 큰 문제는 한 가지. ‘운동 센스’가 남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아웃라이어’(2009)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특정 분야에서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달인의 경지에 오른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해 유명세를 탔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는 뜻이리라. 일견 그럴싸해 보인다. 노력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어느 분야건 ‘악마의 재능’을 타고난 ‘재수탱이’ 천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천재들은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노력형 둔재들을 쉽게 따돌린다. 필자같이 운동 신경이 부족한 자가 축구에 1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손흥민처럼 되겠는가? 비틀즈는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상태에서 절대음감으로 대중 음악계를 평정했다. 70~80년대 일류 프로 바둑 기사들은 대부분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나 가난 때문에 정석도 못 배웠던 서봉수는 동물적인 실전 재능만으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김흥국은 대본을 외우기는커녕, 졸다가도 대충 한마디 툭 던질 때마다 웃기는 재주가 있어 TV 예능의 시청률 보증 수표였다.

국가간 무역에서 경쟁국이 따라올 수 없는 산업을 보유한 경우, ‘절대 우위’에 있다고 한다. 동일한 자원을 이용해서 다른 생산자보다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쌀 생산은 드넓은 평야를 가진 미국이 한국보다 절대 우위에 있고, 산유국들의 석유,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생산도 다른 나라가 죽도록 노력해도 당할 수가 없다.

서론이 길었다. 광주·전남 경제도 다른 지역보다 ‘절대 우위’에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면 한결 편하게 앞서 나갈 수 있다. 필자가 꼽은 우리 지역만의 ‘악마의 재능’은 무엇인가?(이미 궤도에 오른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은 논외로 한다.)

첫째 ‘섬 관광’이다. 2200여 개의 섬(전국의 65%)을 보유한 전남의 해양 관광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지난해 전남을 찾은 관광객이 6255만 명으로 경기도(7703만 명)에 이어 두 번째인 이유도 여수 밤바다, 목포 해상케이블카 등 압도적인 해양 관광 자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전남도에서 추진중인 ‘남해안 신성장 관광벨트’ 사업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다.

두 번째는 ‘청정 에너지’ 산업이다. 나주 혁신도시에 세계적 에너지 기업인 한국전력과 관련 기업들이 다수 입주해 에너지 기술 생태계 조성이 타 지역보다 훨씬 유리하다. 또한 전남의 일조량은 전국에서 가장 높아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서도 쉽게 앞서갈 수 있다.

세 번째는 ‘음식’이다. 우리 지역 음식 맛은 재론의 여지가 없이 전국의 미식가들로부터 최고로 평가받는다. 여행객들은 맛집을 검색할 필요조차 없다. 맛없는 식당은 금방 퇴출될 정도로 모든 음식점이 맛집이다. 그래서 전국 최초로 ‘맛의 도시’를 선포한 목포시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자원은 한정돼 있다. 적은 자원 투입으로도 남들을 압도할 수 있는 우리 지역만의 비틀즈, 서봉수, 손흥민을 찾아라. 운동 신경 부족한 필자처럼 백날 노력해도 따라가기 힘든 ‘비교 열위’ 산업에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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