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산 바나나
2020년 06월 16일(화) 00:00
2000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는 바나나. ‘선우엄마’는 동네 슈퍼에서 값비싼 바나나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인다. 결국 없는 살림이지만 큰 맘 먹고 바나나 한 개를 산다. 이를 받아든 아들은 바나나를 이등분해 한쪽을 어린 여동생에게 먼저 준 뒤, 나머지를 똑같이 나눠 엄마와 함께 먹는다. 시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혀 유치장에 갇힌 딸을 찾아가는 엄마 손에 들린 것도, ‘택이’가 선물로 받은 과일 바구니에서 ‘덕선이’를 생각하며 따로 챙긴 것도 모두 바나나 한 개였다.

지난 2015년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드라마에서 바나나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극 중 인물 간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연출하면서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바나나는 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값비싼 과일이었다. 귀한 과일이어서 선우네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맛볼 수 있었다. 추석 무렵 성묫길에 흔히 접하게 되는 으름을 우리는 ‘한국 바나나’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맛은 바나나와 비교할 수 없었다. 생강목 파초과에 속하는 바나나 원산지는 남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부터 인류 역사와 함께 재배되며 차츰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서인도제도, 남아메리카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해남산 바나나가 다음 달 시장에 첫선을 보인다. 해남군 북평면의 신용균·홍홍금 부부는 지난해 600평 규모 시설하우스 내에 바나나 나무 470주를 심었다. 1년 만에 5~6m 크기로 자란 나무에는 바나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오는 7월 수확을 앞두고 있다. 이는 내륙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바나나 농사여서 특히 눈길을 끈다.

물론 이번이 첫 국내 재배는 아니다. 일찍이 1980년대 제주도에서 처음 시작해 국내산 바나나 시대를 열었지만, 1991년 농산물 수입 개방 조치 이후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기후 변화에 따라 전국적으로 농작물 지도가 바뀌고 있다. 앞으로 ‘해남산 바나나’가 국내 과일 시장에서 당당히 제자리를 잡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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