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계급’
2020년 06월 15일(월) 00:00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이 논의되면서 여기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기본소득제는 ‘재산·소득이나 고용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고르(Andre Gorz)를 필두로 수많은 전문가들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할 수밖에 없고, 결국엔 노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기본소득제의 필요성을 제기해 오고 있다.

특히, 최근엔 ‘사피엔스’란 저서로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과학기술의 극적인 발전으로 인류의 대부분이 ‘무용 계급’(Useless Class)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서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하라리에 따르면, 최근까지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각각의 개인이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국가는 전쟁터에서, 공장에서, 투표소에서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겼다. ‘권총을 쥐거나 레버를 당기고 투표를 할 수 있는 한 쌍의 손들에 저마다의 가치를 부여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재, 그리고 다가오는 세기에선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최첨단 과학기술이 등장하면서 대다수 일반인들은 경제적·군사적 가치를 잃게 된다. 이는 개인 소득의 상실로 이어져 결국엔 거대한 규모의 ‘무용 계급’을 형성하게 되고, 정치인들은 이들에게 ‘똑같은 한 표’를 주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이 같은 하라리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기본소득은 결국 대다수 인간이 경제적·군사적·정치적으로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암울한 미래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인 셈이다. 실제로 기본소득제는 핀란드·스위스 등지에서 한때 시도됐고 미국·영국 등지에서도 일부 도입이 검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이제야 시작됐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미래 디스토피아에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최소한이나마 보장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기본소득제 도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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