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2020년 06월 12일(금) 00:00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기사가 일주일 이상 온·오프 라인 뉴스를 달구면서 때아닌 삐라 공방이 일고 있다. 삐라는 전단이나 벽보 등을 뜻하는 빌(bill)의 일본어 ‘비라’(ビラ)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생겨난 말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와 주로 ‘전단지’라는 뜻으로 쓰였지만 6·25전쟁을 기점으로 심리전에 사용된 전단지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

삐라가 처음 대량으로 뿌려진 것은 2차세계대전 때다. 당시 미군은 엄청난 양의 전단지를 일본 곳곳에 뿌려 댔다. 다만 이 삐라는 교란 목적이나 항복을 권유하는 심리전 용도가 아니라 융단 폭격 예정지를 알려 주는 공고문 구실을 했다. 미군은 대놓고 폭격 장소를 알려 줌으로써 자신감을 표출함과 동시에 일본군을 동요시켰다. 더불어 국제사회에는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삐라 살포 뒤에는 반드시 폭격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일본에 공포감을 심어준 심리전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UN군이 수많은 삐라를 공산 진영에 뿌렸다. “북한국 장병들에게, 살려면 지금 넘어오시오. 국제연합군 쪽으로 넘어오시오. 좋은 음식도 주고 치료도 하겠읍니다. 전쟁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대북용 삐라의 내용이다.

전쟁 이후 북한은 공산주의나 북한의 장점들을 적은 각종 선전물을 남한에 살포했다. 당시 이렇게 살포된 선전물들도 ‘삐라’라고 불렀다. 1970년대 북한이 대남용으로 보낸 ‘월북하는 장병들에게’라는 제목의 삐라에는 “공화국 공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생활보장금 1억1천1백만 원~3억3천3백만 원(남한 돈으로), 상금 185억 원까지(남한 돈으로)”라고 적혀 있다.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남북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맹비난을 놓고도 여·야가 입장 차를 보이는 등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정치적인 셈법과 이해관계가 작용했겠지만 어찌 됐든 아직까지도 삐라의 효과가 확실하다는 데 놀랄 따름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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