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고가
2020년 06월 11일(목) 00:00 가가
20년 전, 절대로 다시 하지 못할 ‘귀한’ 취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강점기부터 운행됐던 경전선 광주 도심 구간이 2000년 8월 10일자로 폐지됐는데, 바로 전날 마지막 열차인 부산발 광주행 1555호 통일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승객은 주로 순천·보성·벌교·화순 등지에서 거둔 농수산물을 이고 지고 남광주시장에 와서 팔았던 아낙네들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탈 수 없게 된 기차에서 그녀들은 남광주역과의 인연을 구구절절 털어놓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열차가 2분간 정차한 뒤 사라지자 곧바로 남광주역 및 철로의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 70년간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근대 건축물은 지역 내 논의 과정조차 없이 헐려 사라지고 대신 공중화장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남광주역이나 경전선과 깊은 인연이 있는 백운고가가 지난 6월 4일부터 해체되기 시작했다. 1989년 11월 개통하며 광주의 자동차 시대 개막을 알린 이 백운고가는 지나치게 굴곡이 심해 그동안 사고가 잦았고, 사람의 접근을 막는 고가로 인해 백운광장 주변이 쇠락하는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고가가 사라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의 선진 도시는 진작 그런 추세로 가고 있었다. 서울만 해도 고가는 사람 및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를 지향하는 가운데 반드시 철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서울은 1968년 우리나라 최초로 들어선 아현고가를 2014년에 철거하는 등 1980년 이후 지금까지 20여 개를 없앴다.
광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다. 삼국시대부터 호남의 주요 도시로 존재감을 보였고, 읍성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돼 대도시로 성장했다. 기나긴 시간 동안 공간이 형성된 만큼 곳곳에 과거와 마주하며, 그 안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 이러한 옛 공간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은 멋대로 철거해 버리고, 오히려 진작 사라져야 할 것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그 처리를 미루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백운고가 철거를 계기로, 광주라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듬기 위한 노력이 배가되었으면 한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남광주역이나 경전선과 깊은 인연이 있는 백운고가가 지난 6월 4일부터 해체되기 시작했다. 1989년 11월 개통하며 광주의 자동차 시대 개막을 알린 이 백운고가는 지나치게 굴곡이 심해 그동안 사고가 잦았고, 사람의 접근을 막는 고가로 인해 백운광장 주변이 쇠락하는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