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 46초’
2020년 06월 08일(월) 00:00
2019년 오스카상 작품상·각본상에 빛나는 ‘그린북’은 흑인과 백인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피아니스트 셜리는 음악적 재능과 교양을 갖춘 천재 뮤지션으로 이미 성공해 부와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셜리는 1962년 미국 남부 순회공연을 가게 되는데, 허풍이 심하고 다혈질인 성격의 백인 토니를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채용하게 된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은 흑인이 갈 수 있는 숙소·음식점 등을 기록한 책자를 뜻한다. 셜리는 출발 전 토니에게 유색인종을 위한 여행 안내서인 ‘그린북’을 건넨다. 문제는 투어 마지막 날 공연 장소에서 일어난다. 원래 흑인을 싫어했지만 공연에 동행하는 동안 차츰 셜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됐던 토니는 어느 식당에 들렀다가 지배인으로부터 흑인은 식사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에 격분한 토니는 지배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셜리는 공연을 거부한다. 지배인은 이들의 등 뒤에 대고 “이것이 바로 흑인을 쓰지 않는 이유”라고 소리 지른다.

최근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페리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8분 46초간 목이 눌린 채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던 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자본주의 한복판인 뉴욕을 기점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분노의 분길로 치솟고 있다.

미국은 1865년 남북전쟁 종결로 노예제가 폐지됐지만 이후로도 흑백 분리주의가 100년간 지속됐다. ‘평등하지만 분리된다’는 원칙이 뿌리 깊게 박힌 탓이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저서 ‘편견’에서 “잘못된 일반화에 근거해 어떤 집단과 그 구성원에 대해 지니는 적대적 태도와 감정”을 편견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편견의 세 형태인 적대적인 말, 차별적 행위, 물리적 공격은 타인의 존엄을 부인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무너뜨린다고 경고한다.

편견 또한 습득되고 확산된다. 영화 ‘그린북’에서처럼 우리 사회에도 분리와 혐오라는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 8분 46초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만이 아니다. “숨을 쉴 수 없다”던 어느 흑인의 절규이면서 죽음으로 편견에 맞선 고통의 시간이었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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