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희
2020년 06월 04일(목) 00:00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면, 그 가수의 ‘음색’이 가장 가슴에 남는다. 나에겐 ‘목소리’로 또렷하게 기억되는 그런 가수가 몇 명 있다. ‘꽃밭에서’의 정훈희.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맑고 청아한데, 왠지 슬픔이 어려 있는 듯하다. 우리 나이로 지금 70세인 그녀가 처음 ‘안개’로 데뷔한 건 1967년이다. 무엇보다 그 맑은 목소리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난해 TV에 나와 부르던 ‘세월이 가면’이나 ‘꽃밭에서’. 그 목소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를 붙잡지 못한 걸 후회하지 말아요/ 날 기억해 주는 것 그걸로 되었소/ 어찌 우리 그날을 잊을 수 있겠소만/ 어찌 우리의 한이 풀릴 수 있겠소만/ 얼마나 더 그대를 기다릴 건지/ 언제 우리 웃으며 또 만날 건지/ 그때까지만 그대여 부디 잘 계시오/ 그때까지 그대여 부디 잘 계시오”

카메라는 천천히 폐허처럼 변해 버린 건물의 복도를 따라간다. 이어지는 흑백 화면 속 하얀 들판 위로 눈발이 흩날리고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녀의 목소리가 흐른다. 첫 소절을 듣고 긴가민가하다 나중에 자막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전체적으로 익숙한 멜로디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변형이다. 5·18 40주년 기념식에서 상영됐던 ‘내 정은 청산이요’(청와대 유튜브). 1000일 동안 제주를 담은 다큐 ‘오버데어’로 깊은 감동을 줬던 장민승 감독과 작곡가 정재일이 제작한 작품이다. 옛 국군통합병원, 교도소 등과 도미야마 다에코의 석판화, 그리고 다양한 음악이 어우러졌다.

영화 ‘기생충’의 음악을 맡았던 정재일이 편곡한 이 노래의 가사는 박창학이 맡았다. 그는 윤상의 ‘달리기’, 김동률의 ‘출발’ 등의 가사를 쓴 작사가다.

25분 분량의 이 작품은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를 보는 듯했다. 특히 마지막에 흐르는 정훈희의 노래는 잊을 수 없다. 앞으로 해마다 오월이 되면, 떠난 이는 물론 남아 있는 우리 모두를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울리는 그 가사와 슬픈 멜로디 그리고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김미은 문화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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