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만난 ‘따뜻한 위로’
2020년 06월 03일(수) 00:00
“힘드시죠? 저도요...넘어진 김에 우리, 잠시 쉬어요.”

며칠 전 광주 금남로를 걷다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문구를 접했다.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쓴 배너였다. 그런데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몇발짝 더 걸어가니 또 다른 글과 그림이 얼굴을 내밀었다. 얼추 수십 여개가 금남로의 가로등 곳곳에 내걸렸다. 종종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를 알리는 배너광고는 봤지만, 이날 금남로의 ‘그것’은 조금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 더 멋진 춤을 위해! 잠시 멈춤’, ‘뭐다고 지낸가~같이 돌아댕긴 그날이 좋았구만! 좋은 걸 좋은지 몰랐었당께’, ‘Rise up Korea, Shout Gwangju’ …. 표현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주제는 하나였다. ‘광주예술인들이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 60x180cm 크기의 배너들에는 절로 미소를 짓게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한 컷’이 새겨져 있었다.

청년작가 노여운은 비록 인적은 끊겼지만 화사한 색감으로 평온한 골목 풍경을 그린 ‘스며들다’를, 작곡가 승지나는 사회적 거리가 서로의 안전을 위한 배려라는 뜻을 담은 ‘코로나 안전송’의 악보를 선보였다. 마치 ‘게릴라 콘서트’처럼 거리에 깜짝 등장한 예술인들의 메시지는 오가는 이들에게 색다른 감흥을 선사했다. 그래서인지, 몇몇 젊은이들은 이들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번 예술배너는 광주문화재단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한 공공 프로젝트다. 이름하여 ‘300, 소리없는 아우성’. 코로나19로 ‘무대’가 사라진 예술인들에게 창작 지원 명목으로 총 9천만원을 들여 300명의 예술인을 선정, 1개 작품당 30만 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긴급 지원예산으로 진행하다 보니 홍보기간이 짧아 예술인들의 참여가 저조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그런데 웬걸, 광주문화재단 홈페이지에 공고가 뜨자 마자 400명의 신청자가 몰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코로나19로 수입이 끊긴 예술인들이 앞다투어 이번 사업에 문을 두드린 것. 심사를 거쳐 선정된 300점은 지난달 말 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금남로 5가, 일부 천변도로에 설치됐다.

이처럼 코로나19는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마저 크게 위협하고 있다. 영화관과 공연장, 미술관들이 문을 닫는 데다 각종 축제마저 속속 취소되면서 문화예술계가 올스톱된 상태다. 최근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뀐 후 재개관한 문화예술기관들이 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상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배너 사업은 벼랑끝에 몰린 예술인들에게는 ‘단비’와 같았을 터.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문화광주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비록 예술인들을 위한 ‘작은 지원’이지만 시민들에게는 답답한 일상을 깨는 청량제가 될 수 있어서다. 그러니 혹시 거리에서 ‘예술배너’를 만나거든, 잠시 걸음을 멈추시길. 그들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뜻밖의 위안을 받을 수 있으므로.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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