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2020년 06월 01일(월) 00:00 가가
‘헤어졌다가 모이고 모였다가 헤어지는 것이 반복되는’ 이합집산(離合集散).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이러한 고사성어가 동양적인 사고를 반영한 것인 데 비해 비슷한 의미로 ‘분열, 분파’를 뜻하는 시즘(Schism)은 서양적 사고방식을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합집산이나 회자정리가 사건이나 현상의 복잡한 면면을 최대한 단순화해 ‘보편적인 모습’으로 일반화한 것이라고 한다면, 시즘이란 단어는 그 현상으로 인한 움직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낸 것이라는 느낌이 있어서다.
하지만 동양에서건 서양에서건 이런 단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아무리 강력하고 친밀한 집단이라도 결국엔 나눠지고 해체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과학적으로도 ‘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입증된 상태다.
최근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국회의원 간에 빚어지고 있는 논란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위안부 운동을 대표해 왔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소수 또는 특정 지도자가 이끄는 단체가 신념이나 관행 혹은 권위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두 개 이상의 단체로 나뉘는 ‘시즘’ 즉 분열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직 나만이, 우리 단체만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정의연의 ‘신념’이 실제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단 두 번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고이면 썩는다’는 격언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앞으로의 정의연은 더 이상 지금까지의 정의연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연과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1990년 11월 발족한 이래 30년 동안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공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의연이 분열의 위기를 통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려면 과거를 되돌아보고 과오를 정리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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