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용기
2020년 05월 29일(금) 00:00 가가
2017년 5월 19일. ‘슬픈 생일’의 주인공인 김소향 씨를 문재인 대통령이 안고 위로하는 장면은 어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대표하는 장면이었다. 나 역시 위로를 받았다.
그날 지인이 찾아와 “일을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누구 하나 붙잡고 말할 사람이 없다”며 하소연했다. 그녀가 원한 것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그녀가 가고 나서 혼자 생각했다. ‘만약 김영삼 정부에서 어제와 같은 저런 기념식을 했었다면,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어제 같은 기념사를 했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90년대에 내가 원했던 것은 아마도 위로였던 것 같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80년대의 삶에 대한 위로.
위로받고 싶으나 위로받을 수 없을 때, 인간은 외롭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위로를 받으려면 위로하는 이가 당사자의 아픔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고, 당사자가 느끼는 그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남이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외로움은 이기적인 감정이다.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고 나의 아픔이 사라지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럽도록 외로운 마음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참석한 정부 공식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 함께 부르는 것이,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내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도 저 여인처럼 위로받고 싶었구나” 새어 나오는 탄식처럼 나는 혼잣말을 했다.
80년 광주를 놓고 봤을 때 문재인 정부는 남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5·18 때문에 구속되기도 했고, 5·18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지금까지 노력해 온 사람이다. 우리니까 우리끼리 위로할 수 있다. 만약 광주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외국인이 우리를 위로했다면 물론 고마운 일이긴 하겠지만 진정한 위로라고 하긴 힘들다. 위로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 문재인이 굳이 돌아 들어가는 여인의 뒤를 따라가 안아준 것을 그렇게 해석한다. 인간 문재인은 하고, 나는 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2020년 5월 19일. 어제는 5·18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5·18을 기억하였다. 한때, 80년 광주를 기억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던 시절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애써 광주를 외면하거나 혼자 마음 속에 담고만 있었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80년 광주는 기억해야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아가 그런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과연 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제, 어떤 이가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아마 두려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일은 모른다. 세상 모든 일은 닥쳐 봐야 안다. 그 순간, 그 장소에 있는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빛바랜 경험을 기억의 심연에서 끌어 올려 이렇게 자문했다. ‘80년대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 시절을 살 수 있을까?’ 마음이 찹찹했다. 하지만 세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우리 사회는 80년 광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만약 우리 시대에 다시 있어서는 안될 폭력이 자행된다면, 20세기의 그것처럼 탱크와 총칼이 아니라 코로나19처럼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들의 숨통을 조일 것이다.
나이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뱃살을 나잇살이라고 한다. 생기는지도 모르게 생기지만, 빼려고 해도 좀처럼 빠지지 않는 속성 탓에 핑계 삼아 이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마음의 묵은 때도 마찬가지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두텁게 쌓여서 좀처럼 털어내기 힘들다. 마음의 묵은 때를 깨끗하게 털어내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든 걸림 없이 홀가분하게 행동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몸의 때는 혐오하며 매일 씻으면서도, 마음의 때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안개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5월 19일 아침, 오월의 한 가운데서 진정한 용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용기는 마음의 무게에 반비례한다.
그날 지인이 찾아와 “일을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누구 하나 붙잡고 말할 사람이 없다”며 하소연했다. 그녀가 원한 것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그녀가 가고 나서 혼자 생각했다. ‘만약 김영삼 정부에서 어제와 같은 저런 기념식을 했었다면,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어제 같은 기념사를 했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80년 광주를 놓고 봤을 때 문재인 정부는 남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5·18 때문에 구속되기도 했고, 5·18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지금까지 노력해 온 사람이다. 우리니까 우리끼리 위로할 수 있다. 만약 광주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외국인이 우리를 위로했다면 물론 고마운 일이긴 하겠지만 진정한 위로라고 하긴 힘들다. 위로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 문재인이 굳이 돌아 들어가는 여인의 뒤를 따라가 안아준 것을 그렇게 해석한다. 인간 문재인은 하고, 나는 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2020년 5월 19일. 어제는 5·18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5·18을 기억하였다. 한때, 80년 광주를 기억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던 시절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애써 광주를 외면하거나 혼자 마음 속에 담고만 있었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80년 광주는 기억해야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아가 그런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과연 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제, 어떤 이가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아마 두려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일은 모른다. 세상 모든 일은 닥쳐 봐야 안다. 그 순간, 그 장소에 있는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빛바랜 경험을 기억의 심연에서 끌어 올려 이렇게 자문했다. ‘80년대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 시절을 살 수 있을까?’ 마음이 찹찹했다. 하지만 세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우리 사회는 80년 광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만약 우리 시대에 다시 있어서는 안될 폭력이 자행된다면, 20세기의 그것처럼 탱크와 총칼이 아니라 코로나19처럼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들의 숨통을 조일 것이다.
나이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뱃살을 나잇살이라고 한다. 생기는지도 모르게 생기지만, 빼려고 해도 좀처럼 빠지지 않는 속성 탓에 핑계 삼아 이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마음의 묵은 때도 마찬가지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두텁게 쌓여서 좀처럼 털어내기 힘들다. 마음의 묵은 때를 깨끗하게 털어내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든 걸림 없이 홀가분하게 행동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몸의 때는 혐오하며 매일 씻으면서도, 마음의 때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안개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5월 19일 아침, 오월의 한 가운데서 진정한 용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용기는 마음의 무게에 반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