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바이러스
2020년 05월 08일(금) 00:00 가가
위대한 과학적 이론이나 의학적 발견은 실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역사상 최악의 독감으로 50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스페인독감이 발생한 것은 1918년이었다. 그러나 스페인독감의 정확한 정체가 판명된 것은 80년이 지난 1997년이었다. 놀라운 것은 전문기관의 연구가 아니라 40여 년 동안 포기하지 않은 단 한 명의 의학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스웨덴 출생으로 미국에서 병리학을 공부하던 ‘요한 홀틴’은 25세이던 1950년, 바이러스 학자인 ‘윌리엄 헤일’로부터 스페인독감에 대해 강의를 듣게 된다. “아직 원인을 모르지만 연구가 불가능한 것은 아냐. 일 년 내내 온도가 0도 이하로 항상 얼어 있는 영구동토가 있는데, 그곳 시체에서 바이러스를 구하면 정체를 알 수 있을 거야.”
강의를 들은 대학원생들은 흘려들었지만 ‘홀틴’만은 곧바로 삽을 들고 영구동토를 찾아 떠났다. 알래스카와 웨일스 등을 돌아다니며 수년 동안 혼자서 삽질을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드디어 ‘브레비그’라는 곳에서 영구동토를 발견, 나흘간의 삽질 끝에 시신에서 폐 조직을 떼어 내 돌아온다. 하지만 갖은 연구에도 당시 능력으로는 바이러스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이후 병리학자로 살아가던 홀틴은 1997년 ‘제프리 토텐버거’라는 학자가 포르말린에 보관된 스페인독감 희생자의 폐를 연구한 논문을 보게 된다. 하지만 폐가 손상돼 바이러스 정보가 완벽하지 않았다. 1950년대에는 바이러스를 분석할 기술이 없었지만 1990년대에는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읽어 내는 기계가 만들어진 후였다. 이 소식을 접한 홀틴은 72세 고령에 다시 동토로 날아간다. 고령인 탓에 조력자들과 함께 간 그는 또다시 삽질로 폐 조직을 얻는 데 성공하고, 토텐버거는 그 폐 조직을 통해 스페인독감의 완벽한 정체를 밝히게 된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전 세계가 명운을 걸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서 맨 먼저 나오길 기원한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역사상 최악의 독감으로 50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스페인독감이 발생한 것은 1918년이었다. 그러나 스페인독감의 정확한 정체가 판명된 것은 80년이 지난 1997년이었다. 놀라운 것은 전문기관의 연구가 아니라 40여 년 동안 포기하지 않은 단 한 명의 의학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