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생활 속 거리 두기와 콩국수
2020년 05월 07일(목) 00:00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냉면광(狂)’들은 이맘때부터 하안거에 들어간다. 메밀꽃 필 무렵부터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던 냉면집을 신흥 ‘냉면 애호가’들에게 양보한다. 대신 가을메밀이 수확되는 10월 이후를 기약한다. 냉면 애호가들이 굳이 여름을 피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면의 호화(糊化)를 더디게 하자면 삶은 즉시 얼음물에 박박 빨아서 물을 야무지게 털어 내야 하는데, 손님이 몰릴 때는 아무래도 이 과정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육수의 염도 역시 들쭉날쭉하기 일쑤라 여름냉면은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가운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뜻 그대로의 ‘냉면’을 아주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이럴 때 요긴한 음식이 바로 콩국수다. 대체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하던 냉면광들도 이맘때 콩국수집을 가면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사계절의 구분이 모호하고 계절 음식이 사라져 가는 이 풍요로운 시절에 콩국수는 그나마 여름 음식으로서의 자존감을 지켜 가고 있다.

사실 콩은 우리민족과 인연이 깊다. 우선 한반도 북부와 만주가 원산지다. 고구려인들이 말을 타고 달리며 기상을 드높이던 바로 그 땅이다. 외래 품종인 감자나 고구마 등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셈이다. 재배 지역이 넓고 재배 조건 역시 까다롭지 않으며 보관도 용이하다. ‘성호사설’을 쓴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익(1681~1763)이 ‘굶주림을 구제하는 데 콩만 한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이 땅의 서민들에게 요긴한 식재료였다.

콩국수는 이처럼 콩과 한반도의 오랜 인연이 낳은 음식이자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음식이다. 콩국은 이미 고려시대에 편찬된 의서인 ‘향약구급방’에 ‘대두즙’으로 기록될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면서도 소화가 잘 되니 여름 음식으로 안성맞춤이다. 여기에 찬 성질의 밀국수를 말고 더운 성질의 열무김치를 찬으로 곁들임으로써 균형까지 맞췄다. 19세기 말에 편찬된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콩을 물에 불린 후 살짝 데치고 갈아서 소금으로 간을 한 후에 밀국수를 말아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이 조리법은 오늘날 콩국수를 만드는 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처럼 원형이 잘 전해져 오는 콩국수에 최근 들어 요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농도가 짙어져 콩국이 점점 콩죽이 되어 간다. 단지 농도가 짙은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콩과 함께 잣, 땅콩, 캐슈너트 등의 견과류를 넣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대중은 점점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여기에 얄팍한 상술까지 가세하니, 조상님들이 수백 년에 걸쳐 애써 만들어 놓은 맛의 균형을 순식간에 말아먹는 형국이다.

이를 복원할 수 있는 아주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직접 콩국수를 만들어 보시면 된다. 우선 형태가 둥글고 표면에 윤기가 흐르는 노란콩(메주콩)을 구입한다. 콩을 여러 번 깨끗하게 씻은 다음 콩 분량의 3~4배쯤 물을 붓고 하룻밤 불린다. 다음날 아침에 콩을 삶는데 덜 삶으면 비리고 너무 삶으면 화독내(火毒내)가 난다. 속까지 익고 껍질이 쉽게 벗겨지는 정도가 적당하다. 수시로 거품을 걷어 주는 수고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삶은 콩을 찬물에 식히며 양손으로 살살 비벼 주면 껍질이 벗겨진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해야 깔끔한 결과물을 얻는다. 이를 믹서기로 갈면 콩국이 만들어진다. 물과 소금으로 콩국의 농도와 간을 조절하고 소면이나 중면을 삶아서 말면 비로소 한 그릇의 콩국수가 완성된다.

완성된 콩국수를 먹을 때도 순서가 있다. 우선 국물을 한 모금 마셔 본다. 기대했던 것만큼 고소하지 않으니 처음엔 좀 갸우뚱할 수 있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두세 모금 더 마셔 보면 그때 비로소 맛이 느껴진다. 그것이 진짜 콩국의 맛이다. 이미 경험한 인간의 감각은 꽤 오래 유지된다. 이제부터는 면과 함께 먹어도 심심함 속에 묻어나는 콩 본연의 고소한 맛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콩국수를 만들다 보면 ‘이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한 그릇 사 먹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 지점이다. 예전 같으면 귀찮아서 하지 않았을 음식에 도전하는 것. ‘생활 속 거리 두기’ 시절에는 이런 귀찮음이 오히려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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