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0년 04월 13일(월) 00:00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작은 생명을 키웠으니”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북유럽의 4월은 대기가 불안정해 흐린 날이 많다. 싹을 틔우기 위해 생살이 벗겨지는 쓰라림을 감내하는 여린 새싹에서 시인은 애처로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드리워진 4월의 이미지 또한 무참하고 가혹하다. 지난 2014년 ‘근현대 최대 참사’로 꼽히는 세월호 침몰이 있었다.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 학생 등 모두 305명이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억압의 권위주의와 만연된 안전불감증,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 맞물려 일어난 대참사였다.

4·19혁명이 있었던 1960년 4월도 고통의 역사로 기록돼 있다. 이승만 독재와 부정부패, 부정선거로 촉발된 시위는 남원 출신 김주열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들불처럼 번졌다. 푸른 청춘들이 들고 일어났던 4·19정신은 80년 광주민중항쟁 등 이후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2020년 4월 또한 잔인하고 무참하기 이를 데 없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패닉 상태에 빠져 아직까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망자가 늘어나고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 또한 짙어지는 형국이다. 전염병이 더이상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인류 공통의 화두가 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암울한 소식이다.

인디언들은 4월을 ‘만물이 생명을 얻는 달’로 표현한다. 강가의 얼음이 풀리고,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는 의미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4월을 기억하게 하는 또 다른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인디언들은 또한 4월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로 비유한다. 우리의 이번 선거가 생명과 희망을 틔우는 ‘씨앗’이 되었으면 한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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