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호남의 선택은?
2020년 04월 09일(목) 00:00
우선 옛날이야기 하나 듣고 가자. ‘바리데기’라고 하는 우리 무속 설화다. 오구대왕은 아들이 왕위를 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일곱 번째 자식도 딸이었다. 칠공주의 막내인 바리데기가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바리데기가 됐는데 여기에서의 ‘데기’는 ‘부엌데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다.)

그러나 버려진 바리데기는 어느 노부부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이어 가게 된다. 어느덧 바리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오구대왕은 불치병에 걸리고 만다. 서천 서역국의 영약을 먹어야만 병을 고칠 수 있다는데, 대왕의 여섯 딸들은 모두 저승세계인 그곳에 가기를 꺼린다. 이 때 부모를 찾게 된 바리데기가 기꺼이 떠나기로 한다. 그녀는 온갖 고생 끝에 서천의 생명수를 구해 와 부모를 살린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비례연합정당)이 벌이고 있는 적통(嫡統) 논란을 보며 떠올린 이야기다. “우리 열린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적자(嫡子)다 서자(庶子)다 하는 말이 있지만 민주당이 어려울 때 언제든 부모를 부양할 마음가짐이 있는 그런 효자다.” 어느 여성 의원의 말이다. 아첨을 떨었던 두 딸이 아닌, 효심 깊은 리어왕의 셋째 딸처럼(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자신들이 진짜 효자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우린 그런 자식을 둔 적이 없다”며 한마디로 일축한다.



‘적통 논쟁’ 갈수록 가관



마치 21세기판 홍길동전을 보는 듯도 하다. 자식은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데 정작 아버지는 자신을 절대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나무란다. 서자였던 홍길동처럼 호부호형(呼父呼兄)을 거부당한 자식은 “선거가 끝나면 디엔에이(DNA) 검사를 통해 확인해 보자”고 나온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기만 하다. “더불어 씨, 열린 씨 이렇게 성이 다른데 굳이 그런 검사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 급기야 가만히 있는 어느 연예인 집안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앞서 언급한 그 여성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임재범과 손지창도 성씨가 다르다”고 올렸다. 가수 임 씨와 배우 손 씨는 고(故) 임택근 전 아나운서의 자제로 이복형제 간이다. 적통을 강조하기 위해 애먼 연예인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성씨가 같은 더불어시민당만을 비례정당으로 인정하고, 이름이 같은 열린민주당과는 가급적 ‘정신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적자가 됐든 서자가 됐든 나중에 부모가 어려울 때 도와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은근히 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구대왕의 일곱 번째 딸 바리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이에 비해 ‘자식’(비례정당)이 미래한국당 하나뿐이니 적통 논란이 있을 수 없는 미래통합당에서는 민주당의 이러한 ‘노이즈마케팅’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 듯하다. 이런 논란이 언론에 자주오르내리면서 이들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 사이에 경쟁 구도가 일어나면서 그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전체 파이를 키우는 측면이 있다.” 미래통합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의 말인데 정확한 지적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4·15 총선 비례대표 정당투표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전체 35개 정당 중 이들 비례정당이 당당히 4강에 들었다.

전반적인 지역구 판세를 봐도 민주당에 매우 유리한 형세다. 당초엔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집권 4년차에 치러지기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당보다 더 밉상인 야당 덕을 본 데다 코로나 역풍까지 불면서 단숨에 전세가 역전됐다. 전남여고 출신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공무원 그리고 헌신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국의 의료진들이 의도치 않게 정부 여당을 도와준 셈이 됐다.

최근 민주당 중앙당은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확 달라진 분위기를 확인했으나 처음엔 자신들도 믿을 수가 없어 여러 차례 다시 여론조사를 돌려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가 한결같게 나오자 그제야 안도하면서 그때부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추세가 끝까지 이어진다면 민주당은 야당과의 격차가 그리 크진 않겠지만 제1당만큼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판 변수는 역시 코로나 사태다. 이로 인해 총선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데다 출마자들의 선거운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감염 우려까지 겹치면 투표율이 급격히 낮아질 수도 있다. 따라서 대략 20%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되는 정치 무관심을 동반한 ‘부동층’의 향배가 역대 어느 총선보다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호남 지역의 판세는 어디로 기울고 있을까. 그야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대부분 민주당의 절대 우세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선 옛 국민의당에 23석을 내주고 고작 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이번에는 전체 28석 중 25석 이상을 탈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민생당 쪽에 현역 의원이 많다는 것인데 , 별로 장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4년 전 호남에 불었던 국민의당 열풍과 같은 바람은커녕 이번엔 미풍(微風)조차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민생당 일부 의원조차도 ‘이낙연 마케팅’에 나설 정도이겠는가.

어찌 됐든 과거 선거에서 호남은 늘 전략적 투표로 일당독재를 견제해 왔다. 너무 오른쪽으로도 너무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절묘하게 균형추 역할을 해 왔다. 제1당(혹은 제1야당)에 표를 몰아주면서도 비례대표만큼은 진보 세력에 어느 정도 표를 분배해 주기도 했다.



느긋한 민주 다급한 민생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는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만약 민주당이 싹쓸이를 한다면 호남의 국회의원은 거의 대부분 경험이 일천한 초선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호남 정치력의 약화를 막기 위해선 재선 이상의 민생당 후보에 표를 몰아줄 필요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또 ‘그 밥에 그 나물’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 맘에 걸린다.

아무리 둘러봐도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 찾기가 ‘밀밭에서 포도주 찾는’ 격이니 이래저래 고민이다. 그래도 이번에 민생당 의원 중 몇 사람만큼은 살렸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정치9단으로 노마지지(老馬之智)를 기대할 수 있는 후보, 장관 이상을 지내 중량감이 있는 후보, 그리고 5·18 진상 규명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했던 후보 등. 최소한 이들 서너 명의 의원은 살려줌으로써 민주당의 일당독재를 견제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인데…. 과연 호남의 전략적 투표는 이번에도 다시 이뤄질 수 있을까.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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