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곰의 덫’을 극복하라!
2020년 03월 24일(화) 00:00

이정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장

160m 파3, 거리만 놓고 보면 웬만한 아마추어 골퍼도 어렵지 않게 온 그린이 가능한 거리다. 그러나 그린 주변이 온통 물과 모래 함정으로 둘러싸인 좁다란 그린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승 상금만 15억 원에 달하는 ‘PGA 혼다클래식’ 15번 홀이다.

동양에서 온 곰처럼 우직하게 생긴 선수가 15번 홀 티박스에서 깃대를 노려보며 고민에 빠진다. 안전하게 돌아가 파를 지킬 것인가? 함정에 빠질 각오로 닥치고 공격할 것인가?

현재 4위, 남은 홀은 4개, 순위가 앞선 경쟁자들은 세계 최고수들. 같이 플레이하는 선수는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호주 선수. 동반자가 함정에 빠져 경쟁에서 탈락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찰나의 망설임 끝에 작은 눈빛이 빛나고 거침없이 휘두른 아이언 샷은 홀 컵을 향해 맹렬히 직진한다. 갤러리의 함성과 함께 물과 모래 함정을 어렵사리 건너간 볼은 홀 컵 2m 지점에 안착, 가볍게 버디를 낚는다. 순위가 4위에서 1위로 수직 상승하는 순간이다.

지난 3월 1일 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방 안에 강제 칩거 중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후련하게 풀어 준 선수가 바로 우리나라의 임성재 선수. 미국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혼다클래식, 공포의 ‘베어 트랩’(Bear trap·곰의 덫·15~17번홀)에서 두 개의 버디를 낚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통해 PGA 첫 우승을 일궈 내며 15억 원을 거머쥔 통쾌한 장면이다.

혼다클래식이 열린 팜비치 골프장의 ‘베어 트랩’은 워낙 어려워, 리스크를 감수하는 공격적인 샷에 대하여 성공에 따른 달콤한 보상이 주어지는 반면, 삐끗하면 곰이 파놓은 트랩에 걸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공포에 떠는 홀이다.

사실 ‘베어 트랩’은 차트나 그래프를 이용하여 자산 가격을 전망하는 금융 시장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다. 예를 들어 주식 시장이 지지선을 뚫고 하락세를 보일 때, 일부 성급한 투자자들은 추가 하락을 염려하여 손절 매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시장이 상승세로 반전하게 될 경우, 이 성급한 투자자들을 ‘베어 트랩’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극심한 불황에 신음 중이다. 당초 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과거의 전염병 발생 사례를 감안해 볼 때 경기는 ‘V자형’ 회복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예상 밖으로 강한 전염력을 보이며 급기야 WHO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자, 월가의 닥터 둠(Dr. doom, 경기 비관론자)들을 필두로 상당수 전문가들은 과거의 전염병 발생 사례와는 다른 미증유의 경제 위기가 촉발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와 다르게 ‘바이러스 위기’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자포자기적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지금은 비관론자들의 논리를 귀담아듣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할 엄중한 위기 상황이다. 하지만 경제 위기의 전형적인 모습은 작은 충격에서 시작하더라도 언론과 투자자들의 ‘비관적 군집 행동’이 더해지면서 증폭되기 마련이다. 경제 주체들이 지나치게 위축될 경우 경기는 더욱 침체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뜻이다.

희망 섞인 예를 들어 보자. 만약 한두 달 뒤에 코로나19 치료제가 전격 개발된다면? 필시 지금의 경기 침체는 ‘경제 위기’ 전조였다기보다는 ‘베어 트랩‘에 가까운 상황으로 급변하면서, 경기는 급반등(quick bounce)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국민들은 위기 시에 더욱 강해지는 DNA를 가졌다. 영호남 지역 감정을 뛰어넘어 광주시가 대구시를 위해 확진 환자를 데려와 진료해 준 ‘달빛 동맹’(달구벌+빛고을), 착한 임대인 운동, 대구시로 달려간 전국의 의료진, 세계가 극찬한 우리나라의 공중 보건 능력, 대규모 추경 편성, 기준 금리 인하,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을 비롯한 정부와 한국은행의 초강력 경제 대책 등등, 우리 국민들의 위기 극복 노력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중소 상공인들이여!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절망의 바이러스’다. 국민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시라. 22살에 PGA를 정복한 임성재 선수의 용기를 담아 곰의 아가리에 돌직구를 날리시라. 위기는 극복되고 열매는 달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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