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새 세상 꿈꾼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장영은 지음
2020년 03월 20일(금) 00:00
“어머니는 마치 온몸을 부숴 버릴 듯 통곡을 하시고 난 다음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단정하게 앉아 그야말로 모질게 원고지 앞에서 펜을 드시곤 했습니다.”

어머니 박경리를 기억하는 딸의 말처럼 소설가 박경리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전쟁에서 남편을, 몇년 지나지 않아 어린 아이를 잃고 한평생 많이 슬프고 크게 아팠던 박경리는 ‘글’을 쓰며 “그 무엇에도 눌리지 않으리라는 독한 마음”을 지킬 수 있었다.

어디 그녀 뿐이겠는가. 글을 쓰며 삶의 의미를 찾고 필사적으로 글에 매달렸던 여성이. 유방암을 견뎌내며 글을 쓰고 전쟁의 폭력성 등 세상에 대해 가열차게 발언하고 싸워온 수전 손택은 “문학을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라 정의한다. 또 문학을, 글 쓰는 삶을 택했기에 “국가적 허영심, 속물 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움영, 불안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으로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은 장영은의 저서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삶을 건 글쓰기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25명 여성들의 삶과 철학을 담은 책이다.

책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태어난 시기도, 살았던 장소도, 쓴 글의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가장 나다운 나로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쓰다’, ‘싸우다’, ‘살아남다’ 3부에 담겼다.

미국 역사상 두번째 여성 연방 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사회적 차별에 맞서 언제나 진보적인 의견을 내 마녀, 대법원의 수치, 극도로 불쾌한 인간 등 숱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그녀는 저서 ‘나 자신의 말’을 통해, 또 변론문과 판결문을 통해 진보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전차와 버스가 충돌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7번의 척추 수술을 비롯해 모두 22번의 외과 수술을 받았고 디에고와의 불행한 결혼생활로 고통받았던 프리다 칼로는 그 누구보다 많이 읽고 쓰고 그린 여성이었다. 쓰라렸던 자신의 삶에 보내는 찬사를 잊지 않았던 그녀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생 만세!’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책에서는 또 아나키스트 박열의 연인으로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가네코 후미코, 86세인 지금도 강의와 저술 활동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는 제인 구달, 아파르트헤이트가 자행됐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여성이었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인종차별에 대한 글을 쓰며 노벨상을 수상한 나딘 고디머, 버지니아 울프, 에밀리 브론테 등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민음사·1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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